어제 우리집만 잠시 정전이 되었다. 관리실에 사람을 부르는 동안 거실에 양초를 켰다. 나는 그럴 때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대관령 아래 산골 마을에서 살던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 어제 문득 생각난 것은 형제들과 함께 한 그림자 놀이였다.
등잔을 놓는 자리에 따라 등잔 맞은편 쪽의 벽은 우리가 하는 그림자놀이의 훌륭한 스크린이 된다. 등잔 앞에 우리는 손과 다른 물건을 이용해 저쪽 벽에 개와 고양이와 갈매기와 나비를 만들었다. 처음엔 정지된 상태의 동물을 만들어 보다가 조금씩 응용하고 발전하게 되면 움직이는 그림을 만들게 된다. 거기에 몇 가지 설명을 붙이면 한편의 짧은 그림자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이야기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소도구 역시 늘어난다. 손과 책 연필 실패 등을 이용해 만들 수 없는 짐승과 물건들은 미리 그런 그림을 그린 종이를 오려 준비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손과 몇 가지의 소도구를 이용해 형제 관객들 앞에 자신의 창작 영화를 선보였던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그림자를 이용한 단편 애니메이션이 될 텐데, 돌아보면 그것이 바로 우리 형제들의 ‘우추리 영화제’였던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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