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이 확대되고 산업구조와 기술혁신이 빠르게 진전될수록 고용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중요해진다. 특히 고용은 성장과 분배의 순환구조에서 중요한 매개 고리이다. 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논쟁은 다소 소모적이다. 어떤 형태의 성장을 통해서 분배의 기초를 확보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성장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면 분배는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 일자리를 양극화할 경우 성장은 분배를 악화시킬 수 있다.
제3의 길에서 이야기하는 사회투자국가(social investment state) 개념도 사람에게 투자하자는 것으로 고용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善)순환 구조를 확보하자는 국가전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고용복지(workfare)라는 개념도 고용을 통해 분배와 복지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고용이 정말 분배와 복지의 문제를 저절로 해결할 수 있는가? 최근 우리 경제를 보면 저임금·저소득의 영세 서비스 일자리나 비정규직 일자리 비중이 늘어남으로써 고용이 분배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유럽연구센터의 토벤 이버슨 교수는 후기산업사회의 서비스 경제로의 이행으로 고용이 분배를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후기산업사회로의 이행이 분배정치를 약화시킬 것이라는 가설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과거 제조업에 기반해서 고용이 확대되던 시절에는 생산성, 고용, 수요, 임금 간의 선순환이 가능했다. 제조업 제품은 소득 및 가격에 탄력적이었다. 특히 내구 소비재의 경우, 생산성 증가로 가격이 떨어지면 수요가 늘어나고 임금이 증가하여 소득이 늘면서 또 수요가 확대되어 고용도 증가하였다.
그러나 이제 제조업 시장은 성숙 단계로 접어들어 포화상태다. 가격이 떨어지거나 소득이 증가해도 수요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 TV 가격이 아무리 떨어져도 한 가정이 2~3대 이상 갖지는 않는다. 정보통신 부문에서 새로운 개념의 상품이 나오지 않는 한 제조업 제품에 대한 수요는 확대되기 어렵다. 따라서 제조업의 생산성 증가는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이 1980년대에 겪었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90년 이후 겪고 있는 일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30%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고용 비중은 29%에서 19%대로 떨어졌다.
고용은 이제 서비스 부문에서만 새롭게 창출된다. 그러나 서비스 부문은 생산성을 쉽게 높일 수 없다. 간호사 한 명이 돌보는 환자 수를 늘릴 수 있지만 서비스 질 하락을 감수해야 한다. 고용과 높은 임금은 동시에 보장되지 못한다. 즉 서비스 경제로의 이행에 따른 고용 확대는 분배의 악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고용 확대-분배 악화’라는 서비스 경제의 딜레마는 일종의 나쁜 균형이다. 나쁜 균형도 외부로부터의 어떤 충격 없이는 현 상태에서 저절로 벗어날 수 없는 ‘균형’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나쁜 균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 필요하다. 공공 서비스와 민간 서비스에 관한 정부 정책은 여전히 고용과 분배의 성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비스 부문에서 성장-고용-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확보하기 위해 민간 서비스 영역에서의 고부가가치 서비스 확대와 공공 서비스 부문에서의 양질의 고용 창출이 가능할 수 있는 정책적 조합이 필요하다. 민간 서비스 영역의 고용 확대가 질 낮은 서비스 및 저임금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건전한 시장 경쟁 제도를 확립하고 최저임금제도와 같은 제도적 인센티브 구조를 설계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공공 서비스 고용 확대가 재정 악화로 이어지지 않도록 공공 부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개혁이 따라야 한다.
전병유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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