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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2) 세계화한 세련됨? 고속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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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교수의 건축, 우리의 자화상] (2) 세계화한 세련됨? 고속철 역사

입력
2005.03.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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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용산역, 천안 아산역, 대전역, 동대구역, 부산역. 고속철 개통과 함께 최근 1, 2년 사이에 새로 문을 연 한국의 주요 철도 역사이다. 간판을 떼고 건물만 보면 구별이 안 갈 정도로 그 역이 그 역 같다. 비단 고속철 역사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천역, 순천역 등 새로 지을 준비를 하고 있는 역사들도 고속철 역사와 같은 모습이다. 천편일률이라고 할 만하다. 중앙에 대표 양식이 자리잡으면 지방에서 모방하는 형국이다. 요즘 기차 역사나 공항의 설계 공모에 출품하는 안들은 모두 이런 종류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디자인으로 설계하면 마치 고등학교나 군대에 사복 입고 앉아 있는 것 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린다.

왜 그럴까. 이런 디자인은 양식사로 분류하자면 전형적인 하이테크 건축이다. 일반 산업에서 하이테크란 굴뚝 중심의 중공업에 대비되는 첨단 기술을 의미한다. 건축에서 하이테크 양식은 근대 산업재료를 현란한 구조미학으로 재가공한 경향을 일컫는다. 여기에서도 첨단적 이미지는 중요한 요소이다. 철골과 콘크리트의 육중한 산업 구조물을 날렵하고 가벼운 금속 이미지로 화장하고 가꾸는 것이다. 밝고 투명한 유리는 빠져서는 안 될 핵심 요소이다.

이 말만 놓고 보면 자랑할 만한 건축양식이다. 산업화에 성공한 나라만이 지을 수 있는 양식이다. 하이테크 양식은 또한 비싼 양식이다. 제대로 지으려면 평당 공사비가 일반 공법의 건물보다 최소한 2배 이상 많이 든다. 일정한 부를 축적한 뒤에야 지을 수 있는 양식이다. 사용하는 부재나 디테일도 일반 철골과는 다르다. 부재와 디테일이 다르면 공법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나라에 처음 하이테크 건축을 선보인 것이 포스코 사옥이었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부품 생산회사를 새로 세웠다. 기술과 경제력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엄두도 못 내는 양식이 하이테크 건축이다. 험난한 산업화의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한 나라만이 가질 수 있는 양식이다.

이런 평가는 고속철 역사에 고스란히 해당된다. 이것이 대형 공공건물이고 첨단 교통시설을 담당하는 공간이니 관련 공무원들은 이런 평가에 더욱 매달리고 싶어할 것이다. 서둘러 고속철을 개통해야만 했던 공무원들의 고심을 한 방에 속 시원하게 풀어줄 수 있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건축양식일 수 있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고속철 기술을 보유하게 된 우리의 위상에 걸맞은 포장지가 필요했을 것이고 하이테크 건축은 이런 목적에 더 없이 잘 맞는 건축양식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물론 일정 부분은 맞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요한 고민이 빠져있다. 하이테크 건축은 일반 산업기술과 달리 순수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좀 더 일반론적으로 얘기해보자. 기술이 과연 가치 중립적이고 문화 중립적인가.

산업혁명 이후 서구의 기술은 19세기 제국 식민지시대와 20세기 자본 지배시대를 관통하며 행동대장 노릇을 해왔다. 혹은 서구적 가치와 문화를 제3 세계에 침투시키는 데 선봉장 역할을 해왔다. 이것을 바탕으로 텃세적인 지배와 침탈을 가능하게 해준 것도 모두 기술이었다. 일반 기술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건축양식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양식이 기차 역사에 쓰였다는 사실이다. 개인 기업 같은 사적 영역에 쓰인다면 그것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 파급 효과도 훨씬 작다. 회장님의 철학과 세계관이 그렇다는 바에야 남이 이러쿵저러쿵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도시들의 중심 역에 쓰는 것은 곤란하다. 기차역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차역은 정신적 중심지는 못 될지라도 문화적 중심지는 될 수 있다. 건축양식을 무엇으로 할지는 여기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이테크 건축은 기술을 공예적 이미지로 연성화(軟性化)한 서구식 장식 양식이다. 그 이면에는 전지구적 침탈을 통해 부를 축적한 서구식 후기 산업사회의 여유와 교만이 숨어있다. 최근 서구의 교통시설에 하이테크 양식이 빈번하게 쓰이는 것은 이것이 세계 보편적인 가치를 갖기 때문이 아니라 그네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문화양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속철 역사에 교복처럼 하이테크 양식이 등장하는 것은 이런 서구의 유행을 비판 없이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해본다.

서울역을 예로 보자. 오래된 본관이 있다. 이것과의 역사적 연속성에 대한 고민은 처음부터 빠져있었다. 일제 강점기 때 지어진 건물이라서 싫다는 애국적 발로도 아니다. 주변의 오래된 건물에 대해, 그리고 기차 역사에 맞는 건축양식이 어떤 것일지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에 불과하다. 중간에 엉뚱한 대형 마트를 완충재처럼 끼워놓고는 슬며시 한쪽 끝에 하이테크 양식으로 새 역사를 지어버렸다. 그나마 하이테크 건축 특유의 구조적 농축력은 확보하지 못했다. 후기 모더니즘에서 충분히 진화하지 못한 어중간한 상태이다. 찐빵 부풀린 것처럼 엉성하게 커지기만 했을 뿐이다.

하이테크 양식으로 기차 역사를 지을 경우 발생하는 중요한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대형공간을 들 수 있다. 현재 지어진 모든 고속철 역사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이다. 하이테크 양식은 멀리서 보면 섬세하고 여성적으로 보이지만 각 부재 단위는 의외로 크다. 이런 큰 부재들이 수도 없이 반복하기 때문에 하이테크 건축은 기본적으로 대형공간에 적합한 양식이다. 대형공간이 후기 산업사회에 나타난 전형적 건축현상 가운데 하나임을 볼 때 이것의 골격을 하이테크 양식으로 짜는 것은 죽이 맞는 일이다.

이렇게 대형화한 공간 속에서 개인은 인간 중심의 척도를 잃고 정신적 소외감에 빠진다. 차가운 금속재료와 속이 다 들여다보이는 유리 사이에서 개인의 인격은 상실된다. 여름과 겨울에 냉난방의 환경문제도 심각해진다. 사람들은 머물고 싶어지지 않는다. 이렇게 큰 공간을 지어놓고 사람들은 덧없이 스쳐지나 간다.

그 큰 공간을 대형 상업시설이 점령해버렸다. 서울역은 상업화의 오염은 좀 덜하지만 썰렁한 대형공간이 사람을 압도하는 문제는 가장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용산역은 대형화의 문제는 좀 덜하지만 이것도 이유가 있다. 많은 면적을 상업공간이 차지해버린 것이다. 주변에 넘쳐나는 것이 백화점이요 대형 마트요 멀티플렉스인데 왜 기차역에까지 삼중 사중으로 이런 시설들을 꽉꽉 채워 넣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시민들은 시설이 생기면 몰려들어 사용하게 되어있다. 개인 기업이 하는 일이라면 몰라도 정부 공공시설인 기차역에까지 이런 시설들이 중복 투자되고 있다. 정부에서 소비를 부추기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이테크 건축은 기술로 시작하지만 결국은 예술 양식으로 귀결된다. 즉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문화적 의미가 침투한다. 이것을 좋은 의미의 세계화로 볼지, 생각 없는 서구문화의 모방으로 볼지는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실제로 고속철 역사에 하이테크 양식이 우후죽순으로 등장한 현상은 IMF 사태 이후 서구의 투기성 자본의 침투와 궤를 같이한다. 또한 프랑스에서 고속철 기술을 수입한 일과도 맞물려 일어났다. 이것이 후기 산업사회에서 기술의 의미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의 현주소이다. 기차역과 같은 도시의 중심 공간을 서구식 하이테크 양식의 대형공간으로 지어놓고 그 속을 다시 상업시설로 가득 채우며 선진국에 올라섰다고 좋아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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