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삶은 투쟁이고 투쟁할 때보다 더 진정 살아 있음을 절감하는 순간은 없습니다. 달리기는 생명의 고통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고통은 희열을 주지요. 달리기는 열정의 추구가 열정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주었습니다."
보통 마라톤(42.195㎞)의 10배나 되는 거리를 단번에 달리는 울트라마라톤으로 유명한 미국의 딘 카르나스이스(42)가 지난 17일 자전적인 저서 ‘울트라마라톤 맨: 밤새 달리는 자의 고백’(Ultramarathon Man: Confessions of an All-Night Runner·펭귄출판사)을 펴냈다. 인간의 기록이라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그의 비밀이 공개되자 미국 언론들이 일제히 주목하고 나섰다.
카르나스이스는 작년 여름에 422㎞를 75시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달렸다. 일류 선수들도 한 번 완주하면 5~6㎏씩 빠진다는 마라톤을 내리 10차례나 뛴 셈이었다.
그가 지옥의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30세 생일이던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삶에 뭔가가 빠져 있다고, 뭔가 허전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밤새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고 파티를 즐기던 그는 갑자기 마당으로 나가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는 뛰기 시작했다. 무려 48㎞를 밤새 내달렸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신을 보자 얼마 후에는 160㎞로 눈을 높였다. 그 다음엔 320㎞에서 계주 경기였지만 혼자 나섰다. 마지막 1.6㎞를 6분 만에 주파하고는 결승선에서 기다리던 아내와 아이들을 끌어안고 쓰러졌다. 발톱이 다 빠지고 일시적으로 장님이 되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자연생식 회사를 운영하는 그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유치원 시절. 어머니가 여동생을 돌보느라 차로 데리러 오지 못하자 꼬마는 집까지 무작정 뛰어갔다. 고교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나 대학에서부터 제약회사 세일즈맨 시절까지 10년 넘게 달리기는 중단됐다. "그 때는 아무 생각 없이 술독에 빠져 지냈지요. 차츰 제 인생항로에 회의가 들었습니다. 바로 그 생일 파티 날 불현듯 답이 떠오른 것이지요."
카르나스이스는 매주 금요일 밤이면 딸(10)과 아들(7)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 준 뒤 ‘근처’ 온천까지 113㎞를 달린다. 가족들이 다음날 눈을 떴을 때면 그는 어김없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달리면서 잠도 잔다. 175㎝에 70㎏인 그는 우람한 근육질이다. 매일 두 차례씩 팔굽혀펴기 200개, 턱걸이 50개, 윗몸일으키기 400개를 한다.
강인한 체력과 투지로 지난해 7월 한여름에는 54도나 되는 캘리포니아 사막 데스 밸리에서 위트니산(해발 4,350c)까지 217㎞를 뛰었다. 2002년에는 마스크가 얼어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영하 40도의 남극에서 횡단 마라톤에 성공했다.
그와 함께 달려 본 뉴욕 타임스 기자는 16일자에서 "안락함, 편리함, 신속한 만족이라는 미국 중산층의 3대 생활양식이 이 초인한테는 전혀 행복을 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카르나스이스는 책에서 "도스토예프스키 말이 맞다. 고통은 정신적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유일한 기원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목표가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 아기의 첫걸음처럼 앞만 보고 계속 가세요."
다음 목표는 필라델피아에서 피츠버그까지 480㎞다. 그의 도전에는 항상 ‘왜’라는 물음이 따라다닌다. "인간의 몸이 어디까지 견디는지 궁금해서요." 이건 카르나스이스가 로이터통신 기자에게 한 답이다. 아내 줄리의 지적은 훨씬 명료하다. "저 사람 얼굴 좀 보세요!" 그는 활짝 웃고 있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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