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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盜망신/ 조세형, 서교동서 치과의사 집 털다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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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盜망신/ 조세형, 서교동서 치과의사 집 털다 덜미

입력
2005.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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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부유층과 권력층의 집을 돌며 절도행각을 벌였던 대도(大盜) 조세형씨가 빈집털이를 하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25일 주인이 외출한 틈을 타 고급주택에 침입, 금품을 훔친 조씨에 대해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24일 오후 8시15분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치과의사 정모(63)씨의 3층 단독주택에 스키 마스크를 쓰고 드라이버를 든 채 침입해 손목시계 6개 등 165만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다.

조씨는 이 동네를 돌다 불이 꺼져 있는 정씨의 집을 목표로 정하고 1.5c의 담을 훌쩍 뛰어넘은 뒤 안방 화장실 창문을 뜯고 침입했다. 조씨가 창문을 뜯자마자 미리 설치돼 있던 S경비업체의 전자 감지기가 울려 마포구 서교동 일대를 순찰하던 이 업체 직원 강모(30)씨가 출동했다. 이어 경비업체 측의 112신고를 받은 마포서 홍익지구대 경찰관 6명이 현장에 도착했다. 이들 중 경찰관 4명은 집 밖에서 기다렸고 나머지 경찰관 2명과 강씨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안방 서랍장에서 금품을 훔친 뒤 밖으로 나오려는 순간 조씨는 거실에서 경찰관 등과 마주쳤다. 조씨는 "○○ 재수없네"라며 부엌쪽으로 재빨리 움직여 들고 온 드라이버를 휘두르며 대치했다.

강씨는 가스 총을 쏘았으나 제대로 맞지 않았으며, 조씨는 안방 옆 계단을 통해 3층 다락방으로 뛰어 올라가 창문을 깨고 5c 아래 옆집 정원으로 뛰어내린 뒤 골목길로 내달렸다. 100여c를 도주했을 때 출동한 나머지 경찰관 4명이 차량으로 길 양쪽에서 퇴로를 막았다. 조씨가 다시 달아나려 하자 대기 중이던 경찰관 1명이 공포탄을 쏘았고 조씨가 이에 놀라 주저앉자 주위에 있던 다른 경찰관이 조씨를 덮쳤다.

경찰조사 결과, 조씨는 자신이 점점 잊혀져가는 데다 생계까지 어려워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는 경찰에서 "40년간 노숙생활을 했고 이름은 박○○다. 노점상을 해보려고 범행을 꾸몄다"며 자신의 신분을 숨기다 경찰의 지문확인 과정에서 신분이 밝혀졌다. 경찰은 최근 들어 인근 주택가에서도 도난사고가 잇따랐다는 점에 주목, 조씨의 여죄를 추궁 중이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 조세형 누구인가/ 80년대초 부유·권력층 집만 털어 ‘대도’

조세형씨는 1938년 전북 전주시에서 태어났다. 전쟁 고아였던 그는 소년원을 제집 드나들듯 했다. 속칭 ‘별’이 13개(일본에서의 범행과 이번 사건 제외)나 되는 전과기록은 63년 10월 라디오를 훔치면서 시작됐다.

조씨는 70년대 말부터 경찰에 검거된 82년 11월까지 드라이버 한 개로 부유층과 고위층 저택만 털어 총 수십억원대의 보석과 현금, 어음 등을 절도했다. 특히 그는 훔친 물건의 일부를 가난한 사람에 나눠주는 ‘의적’ 행세를 해 주목을 끌었다. 당시 그가 훔친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세간의 화제가 됐다. 피해자 중에는 전직 경제부총리와 국회의원, 기업체 사장 등 정·재계 인사가 포함돼 있었다.

그는 83년 4월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형사지법에서 결심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넘겨지기 직전 수갑에 묶인 채로 환기통을 뚫고 탈주해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지명수배가 내려진 지 5일만에 경찰관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혀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98년 11월 청송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해 기독교에 귀의하며 지금의 부인 이모씨와 재혼해 아들도 낳았으며, 99년 4월 S경비업체의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제2의 인생을 사는 듯했다. 하지만 도벽은 끊을 수 없었다. 2000년 11월 일본으로 건너가 주택가에서 물건을 훔치다 경찰관의 총을 맞고 체포돼 3년 6개월간 일본 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지난해 3월 감형을 받아 출소해 귀국한 그는 서울 종로구 D복지선교회에 들러 선교의 뜻을 밝히곤 했다. 선교회 이철희 목사는 "종종 찾아와 치매 할머니들과 얘기를 나누고 용돈을 주는 등 봉사활동을 했지만 일본에서 돌아온 후 외부강연 등이 끊겨 돈이 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 세월앞에‘무너진 전설’/적외선 감지기 몰라 ‘옛날식’대로 하다 수모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대도도 없었다. 젊은 시절 신출귀몰하는 ‘월담 솜씨’로 절도 행각을 벌였던 조세형씨는 한때 자신이 자문을 해줬던 S경비업체 직원 등에 의해 붙잡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그는 24일에도 평소의 공식대로 움직였다. 그 공식은 ‘드라이버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 ‘정원사나 가정부가 있더라도 안방은 늘 비어 있게 마련이다’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전 젊은 시절과는 모든 상황이 달랐다. 전자식 적외선감지기가 달려 있었던 것을 모르고 침입하다 S경비업체 종합상황센터에 경보가 울렸고 이는 곧 경찰 112신고센터에 접수됐다. 경찰관이 출동한 것도 까맣게 모른 채 범행을 끝내고 유유히 현관문을 나서다 5분 만에 출동한 경찰과 경비업체 직원들과 맞닥뜨렸다. 그는 3층 다락방 창문을 깨고 뛰어내렸지만 결국 10분여 만에 덜미가 잡혔다.

1998년 15년 만에 만기 출소한 조씨는 S경비업체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범죄예방을 위한 대학강의도 했다. 하지만 물체가 움직이면 이를 즉각 감지해 경비업체와 경찰에 알리는 최첨단 경비시스템의 변화를 따라잡진 못했다.

최근 절도 경향은 적외선 감지기 등의 촘촘한 경비망을 피하기 위해 건물 천장이나 벽을 뚫고 안으로 침입하는 게 보통이다. 특히 실시간 신고로 경찰이 곧바로 출동하기 때문에 여러 명의 절도범이 1분 만에 범행을 끝낸 뒤 달아나는 ‘번개절도’가 유행이다.

경찰 관계자는 "조씨가 사이렌이나 경보등 같은 것만 염두에 둔 것 같다"며 "요즘엔 초범들이나 쓰는 방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을 보면 아무리 대도라도 세월의 흐름은 따라가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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