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항일의사(義士)’로 불리는 조문기(79)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이 치열한 인생역정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출간했다. 그는 일제 말기인 1945년 7월 약관의 나이에 친일파 인사들이 주도한 부민관 집회에 폭탄을 투척한 주인공. 팔순을 기념해 출간한 ‘슬픈 조국의 노래’는 부민관 폭파사건 당시의 활약상과 해방 후 ‘인민청년단’을 결성, 단독정부 수립 반대 활동을 벌인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일본에서 ‘일본강관 파업사건’을 주도해 수배생활을 했고 한국전쟁 중 유랑극단에 참여했던 얘기도 실려있다.
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실에서 만난 그는 지팡이를 짚은 노구에도 눈빛만큼은 여전히 형형했다. 책장에는 비닐에 싸인 항일·친일관련 서적들이 가득 꽂혔다. "한이 많아 3년 전부터 무작정 글을 쓰다 보니 원고지 1,000장이 훌쩍 넘었습니다. 조국을 위해 평생 몸무림쳤는데 그냥 이대로 죽기는 원통했지요."
그는 "이제 남은 것은 친일인명사전 편찬 뿐"이라며 필생의 숙원사업으로 화제를 돌렸다. 올 광복절에는 주요 친일파 명단을 먼저 발표하겠다고 했다. 국회가 예산을 전액 삭감한데 대해 네티즌들이 들고 일어나 모금액으로 버틴 작년상황을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고 표현했다. 친일사전은 내년 말 초고가 탈고되고, 감수를 거쳐 2007년 출판된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사전에 들어가느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당연하다"라며 목소리를 키웠다. "그 시대 친일 안하고 독립운동 안한 사람이 어디 있냐구요? 그건 바꿔 말하면 친일파도 독립운동가도 별거 아니란 얘기지요. 친일도 하고, 독립운동도 했다면 그는 독립운동가가 아닙니다.몸에 생긴 종양이 창피하다고 덮으면 결국 종양 때문에 그 사람은 죽고 맙니다. 역사를 덮어 놓자는 건 민족을 죽이는 짓이지요."
조 이사장은 "출세한 사람 대부분이 친일세력의 후예"라는 말에 이어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큰 일을 하려는 사람은 조상의 친일행적이 있을 경우 시치미 뚝 떼고 감출게 아니라,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민족사업에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종의 참회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반역을 대물림하면 안됩니다. 이를 끊고 선량한 국민으로 새로 태어나야 하지요." 그는 독도문제도 8·15 직후 친일파를 청산하고 민족정기가 바로 섰으면 일본과 담판해서 다 끝났을 것이라고 했다.
출판기념회장으로 떠나면서 그는 자신이 매년 3·1절과 8·15경축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 민족의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독립운동해서 나라 찾아 친일세력에 진상했습니다. 친일사전이 나오면 한국사회가 또 한번 요동치겠지만 친일파 청산까지 제2의 독립운동을 펼쳐가야 합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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