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컴퓨터 단말기에 수십억원대의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설치, 사용한 하나은행에 대해 수사에 나섰다.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는 다른 은행은 물론, 일반 회사에서도 관행적으로 사용돼 왔지만 은행이나 대기업에 대한 전면 수사는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어 불법 복제 관행에 대한 강도 높은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서울 중부경찰서는 23일 하나은행이 은행 내에 설치된 수천대의 PC에 30억원 어치 이상의 사무용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본을 설치해 수년간 사용해 온 혐의(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위반)를 포착,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하나은행 실무자들과 고발인인 마이크로소프트(MS)사 관계자를 불러 사실을 확인한 데 이어 18일 은행 최고기술책임자(CTO)이자 부행장보인 조모(40)씨를 소환 조사했다. 경찰은 이들을 조만간 재소환, 보강수사를 벌인 뒤 내주 중 검찰의 지휘를 받아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하나은행은 자사가 보유한 PC 1만1,400대 중 61%인 6,900대에 MS사의 사무용 소프트웨어인 오피스XP를 불법 복제해 사용한 혐의다. 이 은행은 2001년 소프트웨어 1,500개를 단품으로 정식 구입하고 2002년 말 A은행과의 인수합병 당시 PC 3,000대에 대한 기업사용권 계약을 승계하는 등 PC 4,500대에 대해서만 합법적 사용권을 확보하고, 이후에 증설한 컴퓨터는 정품을 사용하지 않고 복제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MS사는 2년 전부터 "계약조건에 따라 연말마다 실제 사용대수대로 정산하거나 단품을 추가로 구입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은행이 이를 거부하자 경찰에 고발했다. 이에 대해 부행장보 조씨는 "이번 사건은 형사 문제가 아니라 민사 문제라고 보고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면서 "정산과 관련해서는 기업사용권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최근까지 협상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MS사가 무리한 요구를 해 와 결렬됐다"고 말했다.
이 은행은 협상 결렬로 지난해 11월말 기존의 기업사용권 계약이 만료된 후 정품 소프트웨어를 쓸 수 없게 됐으나 계속 사용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최근 다른 은행들과 함께 다국적 소프트웨어 업체 S사로부터도 불법 복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공문을 받은 바 있다.
MS사 관계자는 "이미 계약에 일정정도의 복제 증가분까지 허용해 줬지만 하나은행은 그 이상을 불법 복제해 사용했고 그에 대한 정산도 4개월째 끌고 있으니 경찰의 수사는 당연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MS사는 "다른 기업이나 은행에 대한 더 이상의 불법 복제 소송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문준모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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