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변덕을 부려 이 봄엔 꽃소식이 더디게 올 모양이다. 날이 풀린 것을 몸으로는 느끼겠는데 꽃을 볼 수 없으니 아쉬움이 더하다. 더욱이 근자에는 봄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듯해, 상춘객의 품세를 부려봤자 꽃구경은 못하고 떨어진 꽃잎만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지난 가을에도 단풍구경을 단단히 별렀는데 결국 버스 떠난 뒤 뛰어가는 모양새로 가을을 보냈다. 그래서 올 봄에는 반드시 꽃구경하는 상춘객이 되리라 마음먹고 있는데, 아직 화신(花信)이 없는 듯하니 이러다 지난 가을처럼 될까 지레 겁이 난다.
꽃은 보이지 않지만 서울에서 봄이 온 것을 알 수 있는 모습은 시내 탑골공원 일대에 노인들이 모여드는 것이라 하겠다. 젊은 사람만 봄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하랴.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꽃을 보는 감회가 더한 게 아닐까. 당(唐) 유정지(劉庭芝)의 칠언고시 ‘대비백두홍(代悲白頭翁·임창순 역)’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올해 꽃 지면 얼굴색도 변하리(今年花落顔色改 ) 내년 꽃필 때면 누가 또 건재할까?(明年花開復誰在)… 해마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年年歲歲花相似 )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같지 않구나(歲歲年年人不同)’. 재미있는 것은 이 시가 얼마나 사람들 마음을 휘어잡았는지 다음과 같은 일화까지 전해온다는 것이다. 작자의 장인이 시가 탐나서 사위에게 달라고 요구했다. 그런데 유정지가 이를 거절해 욕심에 눈먼 장인이 사위를 죽이고 이 시를 자기 작품으로 가로챘다는.
직장이 근처인 관계로 종로를 자주 지나게 된다.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느니 세계 최저 출산율이라느니 하는 말을 듣는 요즘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노인문제를 다뤄야 할 시기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연금이 2042년쯤 바닥난다는 보도는 후세들의 암울한 노년을 떠올리게 한다. 우리 자신과 후세를 위해 노인복지와 연금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어떤 미래가 올 것인가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꽃타령 봄타령이 노인문제로 넘어간 것은 나 자신이 꽃을 대하는 마음이 점점 달라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기왕 말이 나왔으니 또 당시 한 구절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칠언절구 고섬(高蟾)의 ‘춘(春)’ 마지막 구절. ‘훈훈한 봄바람도 머리의 눈만은 녹일 수 없다네(縱得春風亦不消)’. 누군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겠는가. 홀연히 왔다 가는 봄같은 우리네 삶인데.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