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핑~’ 어지럼증이 들 정도로 피냄새 진탕 나는 영화를 만들고는 김지운(41) 감독이 하는 말은 이렇다. "순애보적 사랑 영화입니다."
그의 새 영화 ‘달콤한 인생’(4월1일 개봉)에서 주인공 이병헌은 안쓰러울 정도로 극단적인 고난으로 내몰리지만 이유를 모른다. "나한테 왜 그랬죠?" 그의 절박한 질문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물음표를 거둘 수는 없다. 보스의 애인을 사랑하고 그래서 제거당하고 복수한다는 전형적인 이야기인 것도 같다.
하지만 ‘사랑’을 이야기 하기에는 여인과의 교감이 찰나에 불과하고, 그것도 일방적이다. 그리고 그 대가는 너무 크다. "사랑에 빠졌어도, 사랑에 빠진 사실을 모르는 바보 같은 주인공이니까 그렇죠. 사랑을 부인하니 말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마주한 보스에게도 ‘왜냐’고 묻지만, 마음 속으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요. 불가능한 사랑을 꿈꾼 대가인 걸 말이죠."
느와르라는 장르가 다소 의외인 듯 하지만, 코미디(‘조용한 가족’ ‘반칙왕’), 호러(‘장화 홍련’) 등 튀는 공처럼 이런 저런 장르를 섭렵해 온 그인지라, 그리 놀란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좀 황당한 고백이지만, 영화에 대한 구상이 떠오른 장소는, 어느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로 시작하는 도입부의 선문답 같은 대화는 그 화장실 벽에 걸려 있는 문구였다. 흔히 볼 수 있는 ‘생활의 지혜’ 류였다. 평범한 이라면 잠시 고개를 끄덕이거나 웃고 지나쳤을 이 문구에서 그는 ‘달콤한 인생’이라는 영화를 시작했다. 달콤하게 흔들린 찰나와 그 대가로 뒤따르는 선명한 비극에 대한 영화였다.
‘달콤한 인생’의 숨은 주인공은 ‘빛’이다. 전작들도 전형적인 장르를 벗어난 독특한 스타일로 만들었던 터라, 김지운 감독이 만드는 느와르에 대한 궁금증은 유난히 컸다. 그의 손을 거친 느와르는 남성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 화려하고 섬세한 느낌을 띠고 있다. "빛과 어둠의 콘트라스트가 느와르의 핵심이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촬영의 대부분이 밤에 이루어졌습니다."
빛과 그림자의 날카로운 대비는 카라바지오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빛은 억제된 듯 하다가도 주인공의 감정이 격해짐과 동시에 갑자기 퍼부어지기도 하고, 피냄새가 진해지고 폭력의 강도가 세지면 갑자기 강렬해지는 등 끊임없이 변주를 계속한다. "시간 나면 그냥 집에 있는 편인데, 고민이 있을 때…뭐 사소한 거 있잖아요, 잠을 잘까 말까, 뭐를 먹을까 말까…이런 고민 할 때 스탠드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게 습관이에요,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빛의 변화가 사람의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 준다고 할까요."
벌써부터 ‘도대체 다음 영화는 뭐냐’는 질문도 받는다. 장난처럼 "정통 멜로는 아니냐?"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진심으로 멜로에 관심이 있다. "최근에 너무 괜찮은 멜로 영화 2편을 보고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죠. ‘클로저’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인데, 그렇다고 꼭 멜로를 한다는 건 아니고."
영화작업을 ‘이미 가진 것과 앞으로 가질 것의 끊임없는 결합’이라고 표현하는 김지운 감독이기에 벌써 다음을 이야기하는 건 무의미한 일일지 모른다. 좋아하는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심심하면 CD 잔뜩 사서 다 들을 때까지 드라이브를 하고, 그리고 또 "현재의 무의미한 시간을 견디지 못해" 어떤 새로운 영화를 찍게 되겠지만, 예측은 불가능하다.
최지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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