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미디어’와 ‘뉴 미디어’의 싸움이 새 국면을 맞았다. 뉴욕타임스 등 종이신문을 주력 매체로 한 미디어 공룡들이 온라인 매체 사냥에 나섰기 때문이다. 주류 미디어의 자리를 빼앗기기보다는 인터넷 사이트를 집어삼켜 무궁무진한 온라인 광고 시장으로 향하는 문을 열겠다는 것이다. 사이트에 대한 배팅 액수는 이미 수 억 달러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비방디 그룹처럼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는 공룡도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 사냥이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부터. 워싱턴포스트가 1,500만~2,000만 달러를 들여 온라인매거진 ‘슬레이트(Slate)’를 사들였고, 미디어그룹 비아컴은 4,600만 달러에 ‘스포츠라인닷컴(Sportline.com)’을 인수했다.
가장 치열한 싸움은 경제·금융 전문 뉴스 사이트인 ‘CBS 마켓워치(MarketWatch)’를 놓고 벌어졌다. 뉴욕타임스와 보스턴 글로브 등을 보유하고 있는 뉴욕타임스컴퍼니, USA 투데이의 모기업 가넷 컴퍼니, MTV를 거느리고 있는 비아컴 등 내로라하는 미디어 그룹은 물론 야후까지도 몰려 들었고 결국 월스트리트저널을 보유한 다우존스가 이겼다.
뉴욕타임스는 17일 마켓워치를 놓치자마자 재빨리 눈을 돌려 프리미디어 소유의 ‘어바웃닷컴(about.com)’을 4억1,000만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미디어 그룹들이 사냥에 나선 것은 광고시장에서 ‘온라인 강세’경향이 매우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온라인 광고 시장은 96억 달러로 2000년 초 IT시장이 불을 뿜었던 시절보다도 16%가 늘어났고 8분기 연속 성장세를 보이면서 무섭게 커나가고 있다.
메릴린치는 지난해 온라인 광고가 전체 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7% 수준에 그쳤지만 올해는 그 비중이 19%까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 역시 지난해 인터넷 광고수주가 2003년보다 53% 증가한 1,814억엔으로 라디오를 앞질렀다.
이 때문에 사이트 유료화나 인기 무가지 인수합병 등으로 살 길을 찾던 미디어 그룹들이 인터넷 사이트 인수로 방향을 전환했다. 전문가들은 종이신문이 인터넷 매체 인수에 나선 배경에는 영업과 광고가 증가하면서 기존 웹사이트로는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진단한다. 비록 웹 페이지에 올릴 광고물 수는 제한이 없지만 광고주들의 입맛에 맞는 ‘알짜’ 페이지는 공급이 부족한 상태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수백만명의 고정 방문자수를 확보해 놓은 사이트는 더 없이 좋은 광고판이다. 다우존스는 마켓워치를 인수하는 데 5억1,900만 달러(주당 18달러)나 들였는데 이는 마켓워치가 2004년 한 해 벌어들인 돈의 6배에 해당할 정도로 큰 돈이다. 하지만 다우존스는 방문자수가 580만명이나 되는 마켓워치를 따냈기에 아깝지 않다는 계산이다.
온라인 매체들은 신이 났다. 한 때 오프라인 매체를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이제는 몸값을 올리고 메이저 그룹에 흡수돼 한 몫 챙기는 게 낫다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경쟁 사이트를 먹어 치운 미디어 공룡들과 온라인 상에서 경쟁하는 것 역시 힘들다는 현실적인 판단도 이들을 재촉하게 만들고 있다.
실제 유명 인터넷 뉴스 사이트인 ‘더스트리트닷컴(TheStreet.com)’은 또 다른 거대기업이 인수해 줄 것이라는 기대 속에 투자은행인 데이비드 알렌&CO에 ‘좀 더 비싸게’ 팔릴 수 있는 방법 등을 포함한 전략적인 대안을 찾아달라고 주문을 해놓았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 日 포털이 역으로 후지TV M&A시도
일본에선 인터넷포털이 거대 방송을 삼키려다 거센 저항을 받고 있다. 인터넷포털·증권회사인 라이브도어의 후지산케이 그룹 인수 기도는 법정 투쟁으로 번져 이전투구의 양상을 빚고 있다.
라이브도어는 지난 2월부터 TV, 라디오, 신문, 출판사, 음반회사를 거느린 후지산케이의 중핵 회사인 닛폰방송(라디오) 주식 매집에 나서 현재 지분 40% 가량을 장악한 최대 주주가 됐다.
라이브도어는 처음에는 닛폰방송을 통한 후지TV에의 경영참여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후지측이 거부하자 주식공개매집(TOB)으로 경영권 장악에 나섰다. 미국식 적대적 M&A(인수·합병) 방식으로 아예 몸통인 후지TV를 인수하겠다는 것이다.
후지산케이그룹은 닛폰방송과 후지TV의 신주발행권 행사로 라이브도어의 지분율을 떨어뜨리면서 라이브도어 주식매집 기법의 위법성 조사를 증권거래위원회에 요청하는 등 모든 방어책을 동원하고 있다. 라이브 도어는 신주 발행 정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 이겼지만 후지측은 다른 법적 수단을 계속 강구 중이다.
라이브도어의 호리에 다카후미(堀江貴文·33) 사장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통신과 기존 방송의 융합은 세계적 추세이고 결국 방송이 사라질 것"이라며 "라이브도어와 후지의 결합은 새로운 이익을 창출하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세계 최고의 IT·미디어·파이낸셜 기업을 만드는 게 나의 최종 목표"라며 "후지TV가 할리우드에 지지않는 세계 수준의 컨텐츠를 생산하도록 투자하겠다"고 야망을 불태운다. 인터넷 가입자와 TV시청자를 서로 확대 공유하며 이들을 상대로 인터넷 쇼핑·증권·금융 사업을 전개한다는 구상이다.
이에 대해 후지측은 "인터넷 시대에도 언론이자 국민 공공재인 방송의 고유 기능은 달라지지 않는다"며 "우리도 자체적으로 인터넷 사업을 해왔고 더 발전시킬 능력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 문제는 라이브도어가 닛폰방송 주식 매집자금 800억엔을 미국 투자회사 리먼 브러더스에서 조달한 것 때문에 향후 외국자본이 일본 언론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논란도 불렀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佛 르몽드 매출급락…방산업체 자본유치
"우리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나." 프랑스 르 몽드의 에디 플레넬 편집국장은 최근 사임하면서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펜으로 살을 후비라"는 말로 유명한 그는 10년 동안 재임하며 ‘르 몽드식’ 탐사 저널리즘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신문이 방산업체 등에서 거액의 자본유치를 시도하자 편집권 침해를 우려하며 회사를 떠났다.
뉴미디어의 공세에 쓴 맛을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은 프랑스 미디어업체들이다. 세계인의 양심을 대변해온 르 몽드, 리베라시옹 뿐 아니라 세계 제2의 복합미디어 그룹으로 미국의 AOL과 대적했던 비방디 유니버설마저 경영난에 빠져 있다.
르 몽드와 리베라시옹, 르 피가로 등 종이신문은 광고매출의 감소, 무가지의 성공, 인터넷 뉴스 확산 등으로 판매부수가 급감해 모두 위기를 맞고 있다.
AP에 따르면 르 몽드는 8일 최대 주주인 르몽드편집인협회(SRM)의 마리 베아트리스 보데 회장이 스페인 미디어그룹 프리사와 프랑스 언론재벌 라가르데르로부터 각각 2,500만 유로를 지원 받는 경영개선안을 투표에 부쳐 63.5%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이로써 프리사는 12.9%, 라가르데르는 15%의 지분을 확보하게 됐다. 리베라시옹은 3,700만 유로를 받고 금융미디어 그룹 로스차일드에 37%의 지분을 넘겼고, 르 피가로는 군수산업체 다소 그룹에 지분 83%를 넘겼다.
비방디 유니버설은 각종 미디어와 인수합병을 꾀하며 일찌감치 인터넷 포털사이트 사업을 시작했지만 참담하게 실패했다. 2000년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스튜디오를 소유한 시그램사를 인수했을 땐 주가가 60% 폭락했으며, 같은 해 4월 휴대폰과 PC로 인터넷을 검색하는 유럽 최대 포털사이트 비자비를 만들었으나 운영난으로 지분의 50%를 영국 이동통신업체 보다폰에 넘겨야 했다. 결국 2002년 장 마리 메시에르 회장이 사임하고 장 르네 포르투 회장이 투입되면서 이듬해 190억 달러에 이르는 부채를 갚기 위해 기업의 모체가 된 149년 전통의 수도사업을 팔았다. 그러나 도이치 방크 등은 22일 비방디 유니버설의 미래는 여전히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이현정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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