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가짜를 따지자면 ‘몽상가들’은 진짜고 ‘69 식스티나인’은 가짜다.
1968년과 1969년 정확히 1년 차이의 동시대를 배경으로 한 두 영화는 모두 프랑스 68혁명이 주된 모티프다. 그런데 정작 68혁명의 무대였고, 연일 시위가 끊이지 않는 ‘몽상가들’의 파리보다, 지구 반대편 일본의 그것도 아주 조그마한 항구도시 사세보에 사는 ‘69 식스티 나인’의 고등학생들이 더 요란하다.
그들은 학교를 바리케이드로 점거하고는 파리 시위대의 유명한 문구인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고 멋지게 적어 놓는다. 그 의미를 아는지 모르는지는 별 상관 없다. 고다르 영화를 봤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고다르풍 영화를 찍는다는 말로 여학생들을 꼬신다. 69년 8월에 열린 ‘우드스탁 페스티벌’에는 당연히 못 가봤을 테지만, 신문에 난 몇 장의 사진을 보고는 우드스탁 같은 페스티벌을 계획한다. 페스티벌은 우드스탁의 정신과는 전혀 무관하다. "17세 소녀의 몸에 우중충한 체육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그들을 해방시키자"는 것이 목적이다.
68혁명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우드스탁이 실제로 어떠했는지 상관 없이, 이들이 흉내내는 혁명과 페스티벌은 좌충우돌이다. 그렇지만 이 엉망진창에 대한 영화의 평가는 이렇다.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거야." 흉내내는 거면 어떠냐, 즐거우면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것"라는 영화 속 대사를 듣는 순간, 든 생각. 짝퉁 마니아들이랑 같은 생각이네. 영화 ‘싱글즈’에서 친구의 어린 애인에게 "그거 정말 진짜랑 비슷하네요"라는 얘기를 듣고는 "이거 진짜에요"라고 빡빡 우기며 짝퉁 프라다 가방을 움켜쥐던 엄정화처럼, 무엇이든 가짜임을 들키면 죄 지은 듯 했다. 그런데 요즘은 나이키 대신 나이스를 퓨마 대신 임마를 일부러 사입는 게 색다른 즐거움처럼 됐다. 짝퉁에도 짝퉁만의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은 소위 ‘시뮬라르크’ 시대에, 진짜와 가짜의 구분은 정말로 어렵고 때로는 무의미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가짜도 가짜 나름대로의 특징과 독특한 향유 문화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때로는 더 우수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짝퉁 문화건 아니건 너무나도 유쾌한, 영화 ‘69 식스티 나인’ 속 소년들을 보고 있자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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