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세라도 불꽃을 튀길듯한, 그러나 선한 눈빛의 최민식(43)과 웃음 머금은 껄렁함이 매력적인 류승범(25). 둘은 4월1일 개봉하는 ‘주먹이 운다’(감독 류승완)에서 도시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과 교도소 독방을 뒹굴면서도 살기위해 뜨겁게 몸부림치는 태식과 상환을 온몸으로 담아냈다. ‘주먹이 운다’는 최민식의 존재를 재확인한 자리이며, 류승범을 재발견한 영화라 할 수 있을 만큼 관객들의 가슴이 얼얼할 정도로 연기의 ‘강펀치’를 연신 안겨준다.
사채까지 끌어들여 운영하던 공장을 잃고 아내까지 새 남자가 생겼다고 이혼을 요구하는 상황에 처한 태식. 최민식은 그를 "삶의 바닥을 치고 튀어 오를 수밖에 없는, 그러면서도 아버지로서의 존재도 확인 받고 싶은 인물"이라고 말한다. 패싸움 합의금 마련을 위해 강도를 저지르고, 감옥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한 상환을 류승범은 "거칠게 살아가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자신을 알아가는 청년"이라고 소개한다.
태식과 상환이 회한이 점철된 인생의 탈출구이자 새 삶의 디딤돌로 삼은 것은 권투 신인왕전. 절망의 끝에 서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참회를 주먹에 담아 휘두르는 두 사람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결승에서 조우한다. 신인왕전 장면을 위해 최민식과 류승범은 주5회 하루 4시간씩 5개월간 특별훈련을 받았다. 서울체고 권투부 학생들과 스파링을 하기도 하면서 ‘결전’을 준비한 둘은 1주일 꼬박 걸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6라운드 권투경기 장면을 찍었다.
실전과 연출이 8대2인 연기가 부담스럽기는 둘 다 마찬가지였다. "울분과 고뇌가 폭발하는 장면인데 피할 수는 없잖아요. 안전사고의 두려움 때문에 안일하게 연기하는 것은 영화를 망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연과 실전은 하늘과 땅 차이이니까요."(최민식) "권투가 이렇게 힘든 운동인지 몰랐습니다. 한 라운드 한 라운드 링에 오르는 것이 정말 괴로웠어요."(류승범) 대충의 얼개만 잡아놓고 주먹을 주고 받는 상황이었음에도 NG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촬영해야 하는 고역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이를 악물고 링 위에서 버틸 수 밖에 없었다.
두 사람이 카메라 앞에서 호흡을 맞추기는 이번이 처음. 류승범은 "같이 작업을 하지 않아도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던 선배님이라 긴장되면서도 영화 촬영 내내 행복했다"고 말한다. 따로 각자의 굴곡진 인생을 보여주다 마지막에서만 함께 연기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한다. 최민식은 "연륜과 기교와는 무관하게 온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제대로 된 연기인데, 류승범이 그렇다"며 " ‘주먹이 운다’는 그의 존재감이 확연히 드러나는 영화다"고 후배에 대한 칭찬을 잊지 않는다.
‘치고 받으며’ 나이를 뛰어 넘은 우정을 쌓은 두 사람은 ‘주먹이 운다’가 가족의 사랑을 담은 영화라고 말한다. "정서적으로 끈끈하고 뜨거운, 그리고 여린 영화입니다."(최민식) "권투는 조명이나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가족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류승범)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에도 출연하는 최민식은 ‘올드보이’부터 이어진 강행군에 "너무 지쳐서 올해는 무조건 놀 계획"이라고. 반면 아직 차기작이 정해지지 않은 류승범은 "소모적이지 않으면서도 영양분이 될 수 있는 작품을 많이 하겠다는 각오로 20대를 보내고 싶다"고 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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