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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히틀러와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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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살면서] 히틀러와 독일인

입력
2005.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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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은 다수의 지지를 받던 인민국가였다." 역사가 굇츠 알리의 새 책 ‘히틀러의 인민국가’에서의 주장이다.

히틀러는 담배세와 주세, 기업가 및 고소득자들의 세금을 올려 저소득층의 세금부담을 덜어주었다. 1942년 말엔 그래서 전체 납세자 13%가 국가 총 세수 80%를 부담하기에 이른다. 이런 인민중심 정책은 전시에 정점에 달했다. 군인 가족들에겐 그들 평시수입의 73 %가 생계비로 지급됐는데, 이는 당시 영국과 미국의 두 배였다. 또한 그들은 집세와 보험료, 양육비는 물론 석탄과 감자도 배급 받았다.

군인들은 받은 돈을 집에 송금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가치가 급등한 마르크화로 점령지의 물건들을 ‘싹쓸이’해 가족에게 부칠 수도 있었다. 1941년 1월 군인들의 소포에 대한 세관검사가 폐지돼 프랑스 커피, 그리스 담배, 노르웨이 청어와 루마니아, 헝가리 특산품들이 국경을 넘어 독일의 가족들에게 전달됐다. 당시 군인이었던 작가 하인리히 뵐은 아내에게 보내는 소포에 "당신에게 뭔가 보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썼다. 히틀러는 이를 통해 군인들의 충성심을 얻었고, 피점령지 국민들은 바닥난 생필품과 인플레이션으로 생존의 위협을 겪었다.

나치는 일반인들도 잊지 않았다. 폭격 손실을 입은 독일인들은 헐값으로 집과 가구, 생활용품을 제공받았는데 이는 개인당 50㎏의 짐만 허용됐던 유대인들이 수용소로 끌려가며 남긴 것들이었다. 이것이 나치에 의해 ‘독일인민의 소유’가 되었고, 그나마 들고 갔던 물건들도 주인이 가스실로 사라지면 몰수됐다. 적십자를 통해 독일인들에게 분배됐던 비누, 면도칼, 면도크림, 샴푸, 머리기름, 성냥, 담배 등이 그것이었다. 죽은 유태인의 물건이 독일인의 안락과 그를 통한 나치정권 강화에 기여했던 것이다.

전후 많은 독일인들은 자신을 ‘히틀러 독재의 개인적 희생자’로 규정함으로써 도덕적 책임에서 벗어나려 했고, 이것이 ‘전체는 유죄인데 개인은 무죄’라는 역설적 상황을 낳았다. 그러나 당시 다수의 독일인들이 피점령지 국민과 유대인들의 효과적 착취를 통해 체계적으로 분배된 국가적 이익의 수혜자라고 한다면 책임 문제는 새롭게 제기된다. 이는 또 ‘자국이기적 정치’의 윤리문제와도 관련된다. 타 국민과 소수인종의 희생이 있더라도 자국민만 만족시킨다면 ‘좋은’ 통치자가 아닌가. 히틀러를 긍정하는 독일 우파들의 이 생각에 어쩌면 부시를 재선시킨 많은 미국인들도 동감할지도 모르겠다.

김남시 독일 훔볼트대학 문화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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