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놓는 작품마다 화제를 뿌리며 흥행에서도 성공을 거둔 드라마 작가로, 이선미(42) 김기호(45) 작가 부부를 빼놓을 수 없다. 지난해 비극 ‘발리에서 생긴 일’을 통해 사랑 안에 내재한 계급갈등과 애욕의 허상을 담아내 트랜디 드라마의 지평을 넓힌 두 사람이 이번에는 코미디를 들고 돌아왔다.
23일 첫 방송하는 MBC 수목드라마 ‘신입사원’(연출 한희)은 청년실업자가 100만을 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 치는 우울한 시대에 대한 기막힌 보고서다. 무협지와 만화에 푹 빠져 사는 백수 강호(에릭)가 전산오류로 대기업에 수석 입사하면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통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의 중핵을 겨냥한다.
"‘위기의 남자’나 ‘발리’ 쓸 때보다 다섯 배는 어려운 거 같아요. 비극과 달리 코미디는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가 캐릭터를 관장하고 돌봐줘야 해요. 아차 해서 한 발만 삐끗하면 유치하고 말 그대로 우스워지니까. 요즘 완전 공포에 휩싸여 있어요."(이선미) "코미디는 진지해야 해요. 코미디는 우당탕거리는 액션이나 말장난이 아니라 은유와 풍자에요. 웃음이라는 달콤한 옷으로 포장했지만 그걸 벗겨내면 그 안에 인간, 그리고 진정성이 있어야죠."(김기호) 두 사람은 말해놓고 보니 겸연쩍었던지 "저희 꼭 ‘자뻑 작가’ 같죠?"라고 반문한다.
두 작가가 ‘발리’ 후속으로 코미디를 선택한 것은 이런 나름의 철학 때문이다. "‘신입사원’은 원래 후배 작가가 아이디어를 내서 맡겨 놓았던 건데, 작품이 점점 진짜 코미디가 되더군요. 하는 수 없이 저희가 아이디어 사서 처음부터 다시 썼죠."(김기호) "주인공 캐릭터를 만드는데 꼬박 1년이 걸렸어요. 강호는 그냥 한심한 백수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확신도, 능력도 있지만 사회의 벽에 부딪혀 묘한 열등감을 안고 사는 복잡미묘한 인물이에요."(이선미)
두 사람은 극단 연우무대의 배우 시절 만나 인생의 동반자가 된 뒤 함께 카피라이터를 거쳐 드라마 작가가 됐다. ‘별은 내 가슴에’를 시작으로 ‘파일럿’ ‘복수혈전’ ‘내일을 향해 쏴라’ ‘뜨거운 것이 좋아’ ‘천년지애’ 등 12편의 미니시리즈를 함께 써온 이들은 드라마에 관한 한 한 몸이나 다름없다.
"단순한 공동 작업이나 협업 수준이 아니에요. 컴퓨터 한 대에 자판 한 개만 놓고 나란히 앉아서 한 줄씩 쓰니까 거의 한 사람이 쓰는 거나 마찬가지죠."(김기호) "둘이 대사 써놓고 맘에 들 때까지 연기를 해봐요. 한 장면 놓고 30가지 버전을 만든 적도 있어요."(이선미)
그 덕에 이제는 "서로 속으로 생각한대사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 같은 경우가 종종 있는" 경지에 올랐다. 그 경지는 노희경 인정옥 등 작가주의 드라마 작가들과 달리 대중적인 드라마를 쓰면서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게 녹여내는 수준이기도 하다. "시끄러운 ‘소수’가 아닌 말없는 ‘다수’를 위한 드라마도 있어야죠."(김기호) "저희도 노희경씨 드라마 보면서 ‘말 된다. 잘 썼다’고 느껴요. 대중적이든, 작가주의적이든 ‘드라마의 급’은 있죠. 그 급을 높이는 게 중요해요."(이선미)
김대성기자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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