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승원씨가 세상을 등지고 전남 장흥의 집필실 ‘해산토굴’에 자신을 ‘가둔’ 지 올해로 꼭 10년이다. 그 자발적 유폐의 동인(動因)과 성과를 두고, 22일 그는 "갇힘의 의미, 갇힌 자의 축복을 경험하고 싶었다"고, "그것은 바로 꿈꿀 수 있는 자유이고, 초월이고 해탈"이라고 말했다. 그 자유 자재한 꿈의 결정이 신작 장편 ‘흑산도 하늘길’(문이당 발행)이다.
소설은 다산 정약용의 중형(仲兄)으로, 신유박해때 흑산도에 유배돼 16년간 갇혀 살면서 현전 최고(最古)의 어류학 사전 ‘현산어보’를 쓴 실학자 정약전(1758~1816)의 일대기이다. 현산어보에는 승률조개에 대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조개 껍데기 속에서 알이 부화해 "파랑새가 되는 것이라는데, 흔히 말하는 율구조(栗逑鳥)라는 것이 그것이다. 내가 경험해본 바, 과연 그러하다."(p.229)
현대 어·패류 학계에서는 ‘낭설’로 치부하는 이 승률조개의 상징성, 곧 절대고독의 구속을 벗고 우주로 비약하는 파랑새의 무한자유가 소설의 주요 모티프다.
소설은 정약전이 다산과 함께 유배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강진과 흑산도 길이 갈리는 나주에서 다산이 말한다. "저는 형님께서 가시는 흑산(黑山)을 흑산이라 부르지 않고 현산(玆山)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흑의 검음이 가시적이고 무섭고 두려운 어둠이라면, 현(玆)의 검음은 그윽하고 현묘한 시공의 의미라고 한다. "흑산 너머에 현산이 있다. 현묘하고 또 현묘한 세상, 현산으로 가려면 깨끗한 새가 되어야 한다."(p.21)
하지만 천주학쟁이라는 ‘괴질 보균자’로, 뭍에서 쫓겨 온 이 ‘이물질’을 대하는 섬 사람들의 태도는 우호적이지만은 않고, 그 역시 구속의 멍에와 신앙적 갈등, 혈육에의 그리움 등으로 ‘달(月)몸살·비(雨)몸살’한다. 작가는 정약전이 섬 사람들과 대오리 문 창살처럼 "부딪치되 깨지거나 부서지지 않고, 서로를 비껴가고 타 넘"듯 얽히면서, 삶의 궁극적 가치를 찾아나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해서, 소설은 역사인물소설의 서사를 따르되 구도소설에 가깝고, 사서삼경과 주역 예기의 동양철학이 구도의 계단으로 배치된 지식인의 내면소설이다. 그 구도의 길이 ‘흑산도 하늘길’이라면, 그 길의 끝이 ‘현산’인 셈이다.
"흑산도는 거대한 껍데기이고 나 정약전은 한 마리 파랑새이다.… 껍데기는 자기를 가두면서 동시에 자유를 누리게 하는 현묘한 방이다. 갇혀 있음 속에서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거듭난다는 것이고, 전혀 다른 새 생명으로 부활한다는 것이다."(p.232)
"내가 경험해본 바, 과연 그러하다"라는 정약전의 기술(記述)은 한승원 씨가 1995년 시집 ‘열애일기’(문학과지성사)에 담았고, 이번 소설의 끄트머리 가상인터뷰에 옮겨놓은 시 ‘승률조개’의 끝 행 "(파랑새처럼) 나도 그러고 싶다"와 멀찍이서 조응하는 듯하다.
독자는 이 소설에서 정약전을 통해 작가 한승원을 읽을 수 있고, 흑산의 갇힘 속에 온갖 얽힘으로 묶여 사는 자신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승률조개 속 파랑새의 꿈을 꾸고 싶은가.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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