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5월27일 새벽 대한해협.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발틱함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함대사령관은 로제스트벤스키 제독. 길목을 지키고 있던 일본 연합함대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는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세계 5대 해전에 드는 쓰시마 해전은 어처구니 없게 이틀 만에 발틱함대의 완패로 끝났다. 러시아 군함 26척이 격침·나포됐으며, 5,000여명이 전사하고, 러시아 제독을 포함해 6,000명 이상이 포로로 잡혔다. 일본군 병원에 입원한 로제스트벤스키는 자신을 찾아온 도고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상대였으니 패자가 된 것이 부끄럽지 않소."
■ 그런 도고 제독이 ‘동양의 넬슨’이라는 평을 받자 "영국의 넬슨은 군신(軍神)이라고 할 정도의 인물이 되지 못한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수 있는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일본 해군은 이순신 장군의 전략전술을 연구하는 등 ‘이순신 따라잡기’가 한창이었다. 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朗)는 "메이지 유신 후 창설된 해군이 자신감을 갖지 못해 동양에서 배출한 유일한 해군 명장 이순신을 존경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 쓰시마 해전을 앞두고는 일본 해군 간부들이 한산대첩의 전술을 익히기 위해 직접 한산도를 찾기도 했다. 도고가 발틱함대를 격파할 때 ‘정(丁)자 전법’을 사용했는데 이순신 장군은 300년 전 한산대첩에서 이미 학익진(鶴翼陣:학이 날개를 펼친 모양의 전법)과 丁자 전법을 동시에 펼쳤다. "세계 제일의 해장인 조선의 이순신…그의 인격, 그의 전술, 그의 발명, 그의 통제력, 그의 지모와 용기,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도 상찬의 대상이 아닌 게 없다." 도고 함대의 한 간부가 남긴 기록이다.
■ 일본의 독도망언 이후 이순신 장군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KBS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방송 이후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현충사에 참배객이 급증하고 있다. 독도에 이순신 장군 동상과 거북선 모형을 건립하자는 등의 이색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일본 해군이 군신처럼 떠받들던 이순신 장군을 통해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껴보자는 심정일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충무공이 독도사태를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는 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