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문고·우리시대’가 100권이 나왔다. "우리의 눈으로 우리시대를 읽"자며 2000년 4월 첫 책을 낸 지 5년 만의 성과다. 이는 인문학 불모의 이 시대와 포장 거품과 가격 거품에 취한 우리 출판시장에서 ‘작고 짧고 싼’ 문고본 형식으로, 번역이 아닌 순수 저술로 거둔 결실이어서 값지다. 또 그 형식의 성공은, 책이라는 상품의 특성상, 알맹이에 대한 시장의 검증을 내포한 것이어서 독자들에게는 이중의 축복이다.
‘우리시대’는 대졸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재교육 및 지적 욕구를 ‘부담 없는 가격에’ 충족시키자며 기획된 책이다. 하나같이 원고지 600~800매 분량으로 채워졌다. 가격은 3,900원, 4,900원, 5,900원 세 종(種)이다.
가장 힘들었던 점은 필자 선정이었다고 한다. "권위에 기대지 않고, 날 선 문제의식으로 우리 사회의 당대를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편집진은 6만여 명에 이르는 박사급 시간강사 풀(pool)에 눈을 돌렸다. "엄청난 인적 자원이지만 열악한 여건에 학문적 연구 성과의 소통 기회마저 봉쇄된" 이들이다. 그들은 신들린 듯 거침없이 글을 썼고, 그 게걸스러운 허기에 독자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탁석산씨가 쓴 1번 ‘한국의 정체성’과 6번 ‘한국의 주체성’의 경우 각각 1판 25쇄와 17쇄를 거듭하며 판매부수 10만부에 이르는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책의 주제들은 당대의 한국사회의 이해 코드를 찾아 종횡무진한다. ‘다이어트의 성정치’며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텔레비전 보기’ 등 세태의 이론적 맥락과 현상의 함의를 짚어보는 책부터, ‘파놉티콘-정보사회 정보감옥’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떠남 혹은 없어짐-죽음의 철학적 의미’처럼 학문의 영역에서 당대를 조망하는 책 등 역사 종교 철학 미학 시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특히 이 성과들이 모두 번역이 아닌 저술이라는 점에서 평가 받을 만하다.
편집의 굵은 원칙은 ‘대중성’이었다고 한다. 그 대중성은 내용의 심도와 밀도의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지식 생산자와 소비자의 대등한 관계를 의미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주제의 시의성과 참신성, 접근 방식의 신선도 등을 항상 염두에 뒀다"고 말했다.
100권을 이어 오면서 근년에는 중견·원로 학자들의 필진 참여도 적지 않고, 필자 발굴과 함께 출판 희망 원고들의 선별작업도 만만찮다고 한다. 그 사이 ‘고전의 세계’, ‘세계문학’ 문고판 시리즈도 각각 50여 권과 30여 권을 냈다.
‘우리시대’의 주제들이 너무 광범위한 것 아니냐고 묻자 김광식 주간은 "(오히려)지금까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룬 분야의 주제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그 외연을 좀더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00권, 500권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 계속 읽히는 문고가 되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출판사는 100권 기념집으로 그간의 필자들이 20대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20대에 읽어야 할 한 권의 책’을 묶어 낼 예정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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