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통해 관객들이 재일동포의 숨겨진 고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요즘, 지문날인을 거부했다가 영주권을 박탈당한 재일동포 최선애(45)씨의 법정 투쟁기를 다룬 연극 ‘선택’이 국내 무대에 오른다.
2000년 발간된 최씨의 수기 ‘내 나라를 찾아서’를 극화한 ‘선택’은 일본 기야마 프로덕션이 제작하고, 주인공 최선애 역을 맡은 와카무라 마유미씨 등을 비롯해 일본 배우들이 이끌어간다. 24, 25일 있을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소극장 공연이 세계 초연이며, 28, 29일에는 부산시민회관 소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4월13일에는 도쿄에서 일본 공연의 막을 올린다.
오사카에서 태어나 기타큐슈에서 자란 최씨의 아버지는 지문날인 거부운동을 선도하며 재일동포의 권익개선에 큰 공헌을 한 고 최창화 목사. "한국인 이름을 일본식으로 발음하는 것은 인권침해" 라며 NHK방송을 상대로 1엔 소송을 내기도 했던 아버지의 노력으로 최씨는 한국 이름을 지켜왔다. "아버지가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학교를 찾아 선생님께 제 이름을 한국식으로 발음해달라고 당부했어요."
한국이름을 어렸을 때부터 공개적으로 사용해오며 차별을 일상적으로 겪었던 최씨는 지문날인에 대해서는 특별히 분노하지도, 거부할 의사도 갖지 않았다. 그런 그가 지문날인 거부라는 인생의 소용돌이에 빠져든 것은 스무 살 때 대학에서 부라쿠(部落·천민들의 집단 거주지) 출신 친구를 만나 면서부터다. 부라쿠 제도가 철폐된지 200년이 지났는데도 결혼하고 싶은 남자에게 출신을 말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차별을 두려워하는 그의 모습이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재일동포로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 난생 처음 화가 났습니다. 그와 비슷한 처지인 제가 만일 아무 일도 하지않고 현실을 받아들인다면, 후손들도 똑같은 대우를 받으며 저의 전철을 밟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나 지문날인 거부의 결과는 가혹했다.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에서 피아노 유학을 마치고 부모에게 돌아가려 했지만, 일본 정부는 영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신규 입국자로 간주해 180일의 체류만을 허락했다. 이후 그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기나긴 법정싸움에 들어갔고, 2000년 외국인등록법 개정으로 14년 만에 영주자격을 되찾았다. "재일동포 중에는 자식에게조차 출신을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자신을 일본인으로 알고 지내다 16세 때 외국인 등록을 하라는 관청엽서를 받으면 충격에 빠지죠. 재일동포로 고통스럽게 사는 것도, 거짓으로 사는 것도 모두 괴로운 일입니다. 둘 중 하나의 삶을 골라야 하는 것이 ‘선택’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요."
최씨는 당당히 재일동포로서의 삶을 택했지만, 사랑은 일본인을 ‘선택’했다. "아버지나 저 둘 중에 하나가 죽을지 모른다는 험악한 소문이 돌 정도로 가족의 심한 반대에 부딪쳤지만, 음악을 공유할 수 있는 이유 때문에 현재의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씨의 남편인 첼로연주자 미야케 스스무씨는 이번 연극에서 애인으로도 출연한다. 그리고 둘은 22일 세종문화회관 소극장에서 망국의 서러움을 안고 살았던 쇼팽을 주제로 듀오 연주회도 가진다. (02)742-9870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