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파키스탄 핵무기 개발의 아버지 압둘 카디르 칸 박사의 세계 핵 기술 암거래 조사 내용을 북한, 이란 등에 대한 압박용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하고 있다. 칸 박사 조사 내용은 지난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내놓은 보고서 외엔 공개된 게 거의 없고, 파키스탄 정부는 아예 IAEA의 추가 조사를 가로막고 있다. 미국이 사실상 칸 박사에 대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가 20일 의도적 왜곡이라고 보도한 미 행정부의 ‘북한 6불화우라늄 리비아 수출’주장도 이런 독점을 바탕으로 정보를 왜곡한 것이다. 칸 박사는 네덜란드에서 핵 폭탄 제조를 위한 원심분리기 제조 기술을 익힌 뒤 1976년 귀국, 파키스탄의 핵 개발을 이끌었다. IAEA 조사에 따르면 그는 독일 네덜란드 아랍에미레이트 말레이시아 등지에 거점을 만들어 개인차원에서 리비아 이란 등 핵 개발을 시도하는 국가를 직접 상대했다.
리비아의 파키스탄 1억달러 지원, 파키스탄과 북한의 핵 기술·탄도미사일 기술 맞교환 등 파키스탄 정부 개입 증거가 많지만, IAEA조사에선 파키스탄이 철저히 세탁돼 있다. 공개된 칸 박사의 진술 중 북한 관련부분은 북한 과학자들을 말레이시아에서 주로 만났다는 정도다.
미국이 북한이 금지선을 넘어섰다는 주장을 주기적으로 언론에 흘리는 것은 칸 박사 핵 거래망 붕괴 직후인 지난해 4월부터다. 칸 박사 사건 관련자 조사에서 확인했다는 것이었다. 이 보도는 ▦북한이 파키스탄에 우라늄 원광만 팔았는데 파키스탄이 6불화우라늄으로 가공해 리비아로 넘겼는지, ▦북한이 파키스탄에 판매한 6불화우라늄을 파키스탄이 리비아에 재판매한 것인지 ▦파키스탄과 리비아의 거래를 북한이 알고 있었는지 등에 대해 증거가 없다는 반박에 밀려 수면 아래로 가라 앉았다.
그런데 미 행정부는 올 초 다시 이 카드를 들고 나왔다. 워싱턴포스트는 한국과 중국이 북핵 6자회담에 회의적 태도를 보이자 급하게 정보 왜곡이 이뤄진 것이라고 보도했다.
존 울프스털 미 카네기국제평화연구소 비확산담당 부국장은 "북한의 리비아 핵 물질 수출 주장은 구체적 증거 없는 추정일 뿐"이라며 미 행정부가 정보력과 외교력을 한번에 불신 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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