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안팎에서 안전보장 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 길에서 이에 대한 지지를 거듭 표명했다. 또 21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유엔 개혁에 관한 권고 발표를 계기로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할 예정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는 "임기 중 상임이사회 진출"을 공약해왔으며, 올해를 상·하반기로 나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유엔분담금 ▦비핵·평화·군축 국가 ▦국제사회에서 비중이 커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중심 국가라는 게 일본이 내세운 이유다. 그러나 유엔 안팎의 사정은 반드시 일본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는 않다.
18일 각국의 유엔대표부에 사전 배포된 아난 총장의 권고는 "유엔 개혁에는 안보리 개혁이 필수"라며 "가맹국은 상임이사국을 6개국 더 늘리는 A안, 거부권 없는 준상임이사국 8개국을 신설하는 B안, 두 안의 확대수를 변경하는 다른 안 중에서 9월까지 결단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최우선 외교목표로 삼고 있는 일본 정부는 아난 권고를 환영하며 A안을 지지한다. 역시 안보리 진입을 노리는 독일, 인도, 브라질도 일본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들에게 B안은 실권 없이 돈만 더 내는 길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 불만이다.
그러나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기존의 5개 상임이사국은 영향력 저하를 우려해 "굳이 개혁한다면 B안이나 제3의 안이 적절하다"는 게 속내다. 미국은 일본과의 양자 협의에서는 늘 "일본의 이사국 진출을 지지한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존 볼튼 차기 유엔대사가 "안보리는 의사결정의 효율성이 불가결하다"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 안보리 개혁 자체에 가장 소극적이다. 안보리 확대와 다극화는 더욱 귀찮은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제나 미국 편인 일본만의 상임이사국 진출은 괜찮지만 독일, 인도, 브라질의 진출은 그리 달갑지 않다. 또 일본을 견제하는 중국, 인도에 반대하는 파키스탄, 브라질을 경계하는 아르헨티나 등 다른 지역 맹주들과 상임이사국 진출 희망국들 사이의 대립에 말려드는 것도 미국은 원치 않는다.
미국은 일본에 "상임이사국이 되려면 헌법을 개정해 이에 걸맞는 군사적 기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발언도 흘린다. "국제분쟁에서 일본이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느냐"는 뜻으로 아직 일본 내 여론이 수용하기 어려운 주문이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재정·행정에 관한 일반적인 유엔 개혁안은 합의되더라도 안보리는 결국 손대지 못한 채 흐지부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WP "라이스 순방 초점은 日 띄워주기"/ "中 영향력 견제위해"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의 아시아 순방의 초점은 일본 띄워주기에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9일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라이스 장관이 이날 도쿄시내 조치(上智)대학에서 가진 대(對)아시아 외교정책 연설에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 이사국 진출을 명백히 지지한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이 신문은 "라이스 장관이 일본과 중국을 바라보는 미국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서 특히 세계 강국으로서 일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며 "일본을 동아시아 모든 국가들의 정치, 경제발전 프로그램의 모델로 평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중국의 지역적 영향력 증가에 대한 견제 국가로서 일본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WP는 라이스 장관이 일본을 테러와의 전쟁 및 중동의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파트너와 태평양 지역에서의 자유주의 확산의 리더로서 평가한 점도 예로 들었다. 실제로 일본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집권한 이후 줄곧 정치 군사 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동맹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
라이스 장관은 일본을 높이 평가하면서 동시에 중국에 대한 견제 메시지를 강력히 던졌다고 WP는 보도했다. 라이스 장관은 이날 "자신감 있고 평화롭게 성장하는 중국을 환영한다"면서도 "중국은 성장한 만큼 국제적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정치시스템을 개방해 일본처럼 미국이 아시아에서 갖고 있는 경제 군사 안보정책의 틀 안으로 편입시키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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