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1세대의 상징이자 ‘정보기술(IT)업계의 슈바이처’로 불려 온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사장이 또 다른 도전과 실험을 위해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내놓고 2선으로 물러났다. 올해 43세인 그가 꿈꾸는 도전은 대학원에 진학해 바이오·IT·경영 등의 다양한 공부를 더 하는 것이고, 실험은 아직도 소유와 경영이 혼재한 한국형 기업지배구조 개혁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컴퓨터조차 낯설어하던 1988년 서울대의대에 다니던 안씨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프로그램을 만들어 조건없이 무료로 공개하고 이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함으로써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진가와 됨됨이는 95년 안연구소를 설립, 경영자로 변신하면서 더욱 뚜렷이 드러났다. 회사의 잠재력을 인정한 외국투자사들의 수백억원대 매각제의를 거절한 자존심이나 2000년 전후 벤처 한탕주의 광풍이 불 때 정도 경영을 강조하며 업계를 지켜 온 고집, 보유주식에 한번도 손대지 않은 결백성은 경영자로서 그의 자질을 말할 때 빠지지 않는 일화다.
그 결과 안연구소는 지난해 매출 338억원, 순익 106억원이라는 국내 소프트웨어업계 사상 최고실적을 거뒀다. "정상은 보이지 않고 밑은 천길 낭떠러지인 곳에서 버티는 암벽등반가의 심정으로 10년을 살아왔다"는 안씨는 이제 최고의 자리를 버리고 이사회 의장으로 새롭게 출발한다. 국민은행과 포스코의 사외이사로 일해 온 그는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이 곧 기업 가치를 높이는 지름길이라는 인식 아래 ‘대주주=CEO=이사회의장’이라는 벤처업계의 일반적인 지배구조를 바꿔보겠다는 의지를 가진 듯하다.
우리는 그의 실험과 도전이 일개 기업이나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기대와 격려를 보낸다. 외국계 투기펀드가 한국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악용하는 바람에 의미의 혼란을 겪고 있지만 선진적 기업지배구조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명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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