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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독트린이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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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독트린이 가는 길

입력
2005.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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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년 전 군수송기를 타고 독도를 구경한 적이 있다. 조종사가 나선형 저공비행으로 독도를 너댓 바퀴 돌면서 사방에서 이 섬을 내려다 보게 해줬다. 망망창해 위에 떠 있는 두 개 바위섬은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중첩된 모습이었다. 외로운 섬(獨島)이라는 작명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 때 어린 아이처럼 엉뚱한 생각을 했다. 어느날 갑자기 일본 군함이 달려와 이 섬을 점령하려 한다면 불가능하지도 않겠구나 하고 말이다. 역시 독도하면 한국인의 머리 속에 필연적으로 연상되는 존재는 일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벌어지기 힘든 엄연한 현실 앞에 서 있음을 알게 된다. 국가간의 관계는 평화와 전쟁의 두 가지 선택밖에 없으며 그래서 느슨한 국경선일지라도 전쟁을 상정하지 않고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침범할 수 없다는 인식, 그리고 한일간의 특수상황이나 동북아에서의 한미동맹 및 미일동맹 등이 묶여있는 구도가 겹쳐, 결국 절해고도일지언정 독도는 그 바위에 새겨진 한국령(韓國領)으로 남게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독도문제에 관한한 우리 정부의 오랜 대응전략은 조용한 외교였다. 그 배경에는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와 함께 한미일 협력체제의 틀도 큰 요인으로 작용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용한 외교의 대표적 사례가 얼마 전 경찰청장이 독도경비대를 격려하기 위해 방문하려다 좌절된 일이다. 경찰청장의 권력을 생각하면 그로 하여금 아무 말 없이 여행을 포기하게 한 그 힘이 바로 조용한 외교였다. 그러나 국민은 이것이 불만이었다.

이제 조용한 대일외교는 끝났다. 16일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이름)의 날’ 제정 조례안을 통과시킨 일을 계기로 한일관계는 새로운 전환점에 놓여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문제까지 더해져서 국민의 반일 감정은 분출하고 있고, 그제 정부는 대일외교정책을 근본적으로 전환하겠다는 다짐을 담은 독트린을 발표했다.

독트린이란 국제관계에서 정부정책의 근간을 바꾸는 선언이다. 상대국 및 주변국에도 충격을 주는 조치이지만 국민에게도 여러 가지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일이다. 이 독트린을 천명하기 위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소집하였으니 그 상징성이 크기도 하지만, 상황으로 미뤄 대통령의 외교 독트린이라 할 수 있다. 독도문제를 비롯한 일본 내 일련의 움직임을 해방의 역사를 부인하고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는 행위로 보고 대응해나가겠다는 게 독트린의 요지이며, 이것은 바로 대일 강경외교의 선언인 셈이다.

독도문제를 놓고 국민감정이 분출하고 뒤이어 독트린이 발표되는 상황전개 과정에서 언론이 사태를 보도하는 방식이나 논조의 방향을 정하는 일은 중요하다. 정부 당국에겐 정책의 성패가 걸린 문제일지도 모르고 정당에겐 권력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될 문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독트린과 관련하여 우리 신문이 해야 할 일은 일반 국민에게 무슨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를 예상해 주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트린 발표로 국민은 불만과 울분을 해소할 수 있다. 일본에 대해 속시원히 주장하고 비판하며 할 말을 하는 정부를 가졌다는 자존심을 찾게 될 것이다. 또 독도 영유권 강화의 일환으로 경찰청장이 독도방문을 못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이것은 독트린이 가져올 확실한 수확이다.

일본은 어떻게 나올까. 자신의 체면을 살리면서 한국의 비위를 크게 상하지 않을 정도로 맞춰주겠지만 실질적이거나 나라 체면이 걸린 문제에는 무응답이나 소극적으로 나올지 모른다. 우리는 떠들고 일본은 무시하고 상황은 변하지 않는 원점으로 돌아간다면 낭패다.

이런 일보다 더 궁금한 것은 격변하는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지형과 관련하여 집권세력이 이 나라를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독트린이라는 특단의 대일외교 방향전환을 발표할 정도라면 이 문제와 관련한 큰 구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여기에 만족할 만한 답을 전해주지 못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김수종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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