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화사하고 따뜻하다. 행복에 겨운 색채들의 시 같고 음악 같고 꿈결 같은 그림들. 그런데 언뜻 비치는 눈물 자국. 왜?
서울 인사동 학고재 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정경자(66·사진) 개인전 ‘봄의 소리’에 나온 작품에서 받은 인상이다. 그는 한국 화단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프랑스와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다 1990년대 중반 돌아와 조용히 그림만 그렸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94년 귀국 초대전, 95년 유니세프 기금마련 판화전 이후 10년 만이다. 아름답고 우아한 색채로 풀어낸 추상적인 유화 60여 점이다. 파리 풍경을 담은 프랑스 시절의 낭만적인 그림과 1990년대 중반 방영된 같은 제목의 방송드라마를 위한 ‘컬러’ 연작, 그리고 귀국 후 살고 있는 경기 양평의 자연을 담은 그림들이다.
진달래꽃 빛깔이 떠오르는 핑크, 봄 하늘을 닮은 블루 등 그가 구사하는 색채들은 대담하게 분할된 색면 가득 몽글몽글 뭉치거나 서로 번지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그 색채들이 빚어내는 미묘한 진동과 섬세한 조화는 꼭 음악처럼 ‘들린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보는 음악’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보는 이로 하여금 행복감에 젖게 하는 이 그림들은 실은 작가 자신의 고통과 슬픔, 그리움을 맑게 우려낸 것이다. 그는 "내 나라 내 조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오랜 외국생활의 외로움 탓도 있지만, 거기에는 파란만장했던 가족사가 깔려있다. 그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났다.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가 김구 선생 계열이란 이유로 이승만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 가계가 몰락했다. 초등 5학년 때인 1949년 어느 날, 아버지는 잡혀가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을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뒤 가족이 다시 모이기까지 한국전쟁 기간을 포함해 6년간 천애 고아 신세가 되어 무섭고 슬프고 배고픈 시절을 견뎠다. 고교를 마친 뒤 외가인 일본으로 이주, 본격적인 미술공부를 시작했다. 한국에서 상처 받고 건너 간 일본에서 한국과 일본,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돈을 겪어야 했다. 서른 살에 오랜 꿈이던 프랑스 유학을 떠나 파리로 갔다. 그곳 사람들이 보여준 예술에 대한 사랑이 오랜 상처를 씻어줬다. 비로소 자유를 느꼈고 그림도 밝아졌다. 그리고 내내 그리던 조국에 돌아왔다. 귀국을 도와준 초등학교 동창과 나이 오십을 넘겨 결혼하고 양평에 정착했다.
"산다는 건 황홀하고 아름다워요. 마티스가 말했죠. ‘인생은 장밋빛’ 이라고. 제가 겪은 고통과 슬픔을 생의 찬가로 승화시켜 아름답고 우아한 색채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색의 요정들을 능란하게 조종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시인의 마음 또는 음악가의 감성을 품게 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꿈의 세계로 유혹하는 색의 마술사가 되고 싶어요." 전시는 29일까지. (02)739-4937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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