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위의 땅’ 키르쿠크의 귀속권 문제가 이라크 안정을 좌우할 핵심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16일 개원한 제헌의회가 난항을 겪고 있는 것도 시아파 연합과 쿠르드족이 이 땅을 놓고 기세싸움을 벌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변국 이해마저 얽힌 키르쿠크는 역사적으로도 언제나 분쟁의 땅이었다.
세계 2위의 산유국인 이라크 석유의 40%, 전 세계 매장량의 6~7%는 바로 키르쿠크 땅 밑에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인 키르쿠크는 이라크에서 가장 비옥한 땅으로 천여년간 아랍과 쿠르드, 터키계 등이 이 곳을 놓고 다퉜다.
1927년 영국인들이 원유를 채굴하면서 갈등의 골은 더 깊어졌고 70년대 사담 후세인이 집권하고서야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후세인 정권은 당시 이곳에서 주류를 이뤘던 쿠르드족과 투르크멘족 30여 만 명을 20년에 걸쳐 쫓아내고 남부의 아랍계 주민들을 이주시켜 유전 지대를 접수했다.
2년 전 미군이 가장 먼저 키르쿠크를 점령했고 이라크는 ‘이 곳만은 뺏길 수 없다’며 총반격을 펼쳤던 사실에서도 중요성은 확인된다.
당시 미군을 적극 도왔던 쿠르드족은 치안유지권과 북부석유공사(NOC) 사장 자리를 따냈고 임시 헌법을 통해 자치권까지 보장 받았다.
쿠르드족은 한 발 더 나가 키르쿠크를 수도로 삼아 이라크, 터키, 이란, 시리아 등에 흩어진 동족을 모아 대(大) 쿠르디스탄 공화국 건설을 꿈꾸고 있다.
이미 미군 점령 후 곳곳에서 8만 여 명의 쿠르드족이 키르쿠크로 모여든 상태다. 지난 총선에서 쿠르드족동맹이 키르쿠크 지방의회 의석의 60%를 차지하고, 제헌의회 의석 275석 중 77석을 얻으면서부터 쿠르드족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키르쿠크의 수니파 아랍계와 터키계 투르크멘인은 반발하고 있다. 특히 터키의 개입 방침으로 키르쿠크는 이라크의 화약고로 부상하고 있다.
터키는 1,200만 명에 달하는 자국 내 쿠르드족이 크게 동요할 것을 우려, 쿠르드 족이 키르쿠크를 접수할 경우 군사력을 동원하겠다고 경고했다.
지난 해 키르쿠크를 자이툰 부대 파병지로 고려했던 우리 정부가 아르빌로 목적지를 바꾼 것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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