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콘의 퇴출인가, 새로운 임무 부여인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이라크 전쟁 기획자인 폴 월포위츠 국방부 부장관을 세계은행 총재로 추천함에 따라 인사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월포위츠 부장관이 국방부를 떠나는 관점에서 보면 그의 퇴장은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한 획이 그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집권 2기를 맞은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과 전후 정책의 무거운 부담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려는 의도에서 이라크 전쟁의 강력한 옹호자를 정부 밖으로 밀어내는 선택을 했을 수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 추천은 월포위츠를 부시 대통령의 ‘이너 서클’ 에서 내보내고, 능란한 싸움꾼을 국방부에서 나오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월포위츠의 외곽 이동은 곧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라크 정책을 더 확고하게 장악할 수 있도록 길을 치우고, 올해 말쯤 퇴임할 것으로 예상되는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후임을 위해서 길을 여는 의미도 띠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세계은행 총재 자리는 결코 ‘물먹고’ 가는 자리가 아니다. 베트남전 당시의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퇴임 후 옮겼던 자리라는 점을 감안하면 부장관의 세계은행 차지는 영전이라 할 수 있다. 더구나 184개 회원국을 두고 있는 세계은행은 한해 200억 달러 규모의 재원 지원을 둘러싸고 개도국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기구다.
때문에 미국 언론들은 그의 지명을 부시 대통령이 주창한 ‘민주주의 확산’과 연결짓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 추천은 세계은행에 부시 정부의 도장을 확실하게 찍으려는 공격적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전세계, 특히 중동 민주주의 확산을 주장해온 네오콘의 핵심에게 세계은행의 막대한 재원은 미국의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네오콘은 아니지만 국제관계에서 ‘미국의 힘’을 강력히 옹호해온 매파 존 볼튼 전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한 데 이어 나온 월포위츠 부장관에 대한 추천은 국제 다자기구를 틀어쥐려는 미국의 의도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 점은 바로 미국 밖의 세계가 부시 대통령의 이번 추천에 대해 우려를 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제프리 삭스는 "가난과의 전쟁에서 옳은 장수를 선택하는 게 반드시 승리를 보장하지 않지만 잘못된 장수를 선택하는 것은 반드시 실패의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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