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든가, 놀랄 것은 없다든가라며 그것이 마치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 이것은 독도를 점유하고 싶으면 점유하라는 것 아닌가.
과거 일본측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내세웠던 때에도 일본의 국내사정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해 그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 저의를 노골화하고 있는데도 항의라도 한 번 단호하게 한 적이 있는가. 그런 일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여론의 압력에 견디다 못해 겉 모습을 꾸미려고 한 데 지나지 않는다.’
■요즘 신문이나 방송에서 흔히 대하는 주장 같지만 실은 1978년 2월11일자 북한 노동신문 사설의 일부이다.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당시 일본 총리가 국회 답변에서 독도영유권 주장과 독도 중심 영해 설정 용의를 밝히면서 빚어진 ‘2차 독도 논쟁’ 과정에서 나왔다.
이 사설은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기보다 그들이 ‘매국역적 괴뢰도당’으로 규정한 공화당 정권의 대일 자세를 비난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그들의 우려와는 딴판으로 일본의 점유는커녕 한국의 독도 지배는 더욱 확고해졌다.
■반짝하고 끝난 ‘2차 독도 논쟁’과 달리 52년 1월18일 이승만 대통령의 이른바 ‘평화선’ 선포로 촉발된 ‘1차 독도 논쟁’은 59년까지 양국 정부의 주장ㆍ반박 문서가 오가며 뜨겁고 길게 이어졌다. 양국 전문가들이 총동원되다시피 한 논쟁은 60년대 국내의 관련 연구가 본격화하는 데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2차 논쟁’ 이후로도 양국은 간헐적으로 불거진 독도 문제로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지만 딱히 ‘3차 논쟁’이라고 할 만한 대결은 없었다. 정부의 ‘저음(低音) 전략’과 국민적 열기의 적절한 역할분담과 조화가 거둔 성과였다.
■국교정상화 이후 40년 간 이어진 정부의 ‘저음 전략’이 흔들리고 있다. “독도문제는 한일관계보다 상위 개념”이라는 외교부 장관 발언은 영토주권의 절대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독도 입도 완화 등 구체적 조치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원칙 확인에 그치지 않는, 전략 수정의 신호탄인 듯하다.
배경이 무엇일까. 일본의 일개 지방정부를 견제하려는 것이라면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고, 여론에 떠밀린 결과라면 온갖 비난을 무릅써야 했던 40년 전략의 허망한 몰락이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