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을 경제부총리 후임으로 유력하게 검토하는 이유는 우선 실용주의적 ‘경제 살리기’ 정책 기조를 안정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무조정실장을 13개월 이상 맡으면서 정책 전반에 대한 조정 역할을 해 왔기 때문에 ‘경제 수장’을 맡을 경우 차질 없이 무난하게 일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한 실장은 참여정부의 경제 정책 전반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통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실장은 다소 보수 성향이고 규제 완화에도 관심이 많아 시장의 거부 반응도 없을 것이라는 게 청와대 측의 생각이다.
열린우리당 강봉균 의원, 윤증현 금감위원장, 신명호 전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 등 재경부 출신 인사 3명을 제치고 상공부에서 잔뼈가 굵은 한 실장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이유는 ‘이종교배론’에서도 찾을 수 있다. 노 대통령은 ‘동종교배만 할 경우 제대로 개혁할 수 없다’는 논리로 부처간 인사 교류와 외부 전문가의 기용 필요성 등을 역설해 왔다. 이른바 ‘모피아’(MOFIA)로 불리는 재경부 출신 인맥이 경제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공기업 임원들을 독식하는 구조를 깨야 한다는 것이다.
한 실장이 부상한 배경으로는 또 여론 검증 과정에서 가장 상처를 덜 입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초반에 강력한 후보로 떠올랐던 강 의원과 윤 위원장 등은 각각 아들 병역 미필 의혹과 환란 책임론 등에 휘말렸다. 율산그룹을 창업했던 신선호씨의 친형인 신 전 부총재는 ‘율산그룹 부활론’ 때문에 멀어지게 됐다. 이해찬 총리도 총리의 국정 조정 업무를 도와 온 한 실장을 적극 천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관가 일부에서는 "여론 검증이 최우선 기준이 된 셈"이라며 문제를 제기하는 기류도 있다. 한 실장이 통상 분야에 강하지만 금융 및 거시정책을 직접 맡아보지 않아 경제 정책 전반을 총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반대론자들의 논리다. 그럼에도 청와대 관계자는 "한 실장은 청와대 경제수석과 국무조정실장 등을 지내면서 거시 정책도 충분히 다뤄봤다"고 변호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재경부에 미묘한 긴장/ 나이많은 1급이상 물갈이 가능성도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이 후임 경제부총리 후보로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정경제부에 미묘한 긴장감이 돌고 있다.
한 실장은 4명의 후보군 가운데 유일하게 비(非) 재경부 출신으로 거시·금융·세제분야 전문가가 아닌 데다, 모피아를 개혁할 ‘카드’로 청와대가 낙점했다는 설이 파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경부는 겉으로는 "임명권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반응이지만, 내심 동요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이헌재 전 부총리보다 5년이나 젊은 한 실장이 부총리가 되면 그보다 나이 많은 1급 이상 간부 3명을 포함해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가 이뤄질 가능성도 높다.
경제기조의 큰 틀에서 보면 한 실장은 이 전 부총리의 노선을 이어 시장친화적인 안정감 있는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가운데 스크린쿼터 등 시장개방정책은 강한 추진력을 얻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실장은 김대중 정부 시절 통상교섭본부장으로 있으면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실무협의를 주도하는 등 대표적인 개방론자로 꼽힌다.
한 실장은 대외적으로 신뢰감을 주는 합리적 성향의 인물이지만, 경제정책 수장으로서 필요한 카리스마를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처 장악 및 정책 조정에 힘이 부칠지 모른다는 우려와 함께 금융매커니즘에 대한 실무 경험이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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