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새 원내대표를 선출하면서 행정도시법 통과 이후 벌어진 내분을 수습할 전기로 삼으려 하고 있다. 전임자가 법 통과를 여당에 동의해 준데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고, 의원 총회가 다수 지지로 새 대표를 뽑았다고 하니 격렬한 분열은 한 고비를 넘긴 모양새다. 그러나 단순히 사람이 바뀌고, 외피를 새 것으로 갈아입었다고 해서 내연과 폭발을 거듭해 온 갈등의 요인들이 해소된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한나라당의 문제는 그 정도의 과정으로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점이 더 뚜렷해지는 감마저 있다.
당을 분열지경으로까지 몰고 갔던 파동은 국가 대사를 다루는 거대 야당의 역할과 본분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논란을 빚었다. 스스로 선거를 포기하고 눈 앞의 표를 버릴 수 있는 정당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도시 같은 중대사에서 본능적 실리계산 수준의 사고와 행동 이상을 보여 주지 못하는 야당에게서 불신과 절망의 문제는 심각해 졌다. 깊은 경제난에, 남북문제 등 외교적 파고가 심상치 않은 시기에 야당의 제 역할은 정권과 정부를 충실히 견제하고 여당을 능가하는 정책경쟁을 펴 주는 것이다. 그러나 파동에서 한나라당은 확고한 믿음과 미래를 보여 주는 데 실패했다는 지적에 싸여 있다.
집권경쟁에서 실패한 야당이 그 후 3년 차를 맞고서도 아직도 목표와 방향, 원칙을 보여 주지 못하면서 제 아무리 표 계산에 몰두한들 재집권의 기대와 가능성이 생겨날 리 없다. 혼란기 야당이 역할 설정의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을 대변하고 주창하며 추구할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임 강재섭 원내대표가 비록 5선의 경륜에 합리적 면모를 갖춘 중진이라고 하지만 당이 상처 봉합이나 갈등 관리에나 머물 여유는 없어 보인다. 일신과 각성, 분발이 없으면 유사한 파동은 다시 오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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