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역모 교과서' 분석작업 주도·공개/ 양미강 역사교육연대 상임운영위장
"역사교과서 신청본을 받아보고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게 개악돼 있어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우익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문부과학성에 신청한 2005년도판 역사교과서의 분석작업과 공개를 주도한 양미강(45·서울 한백교회 목사)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 상임운영위원장은 역사교과서 입수 이전까지 2005년판이 2001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을 믿었다. 하지만 이는 양 위원장의 기대일 뿐이었다. 양 위원장은 "식민지 지배 미화, 침략전쟁 정당화, 독도에 대한 야욕 노골화 등은 예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고, 특히 북한 위기 조성 부분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며 "일 극우세력이 결집해 준동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역사교육연대는 지난해 10월 새역모의 역사교과서를 간신히 입수할 수 있었다. 2001년 파동 이후 일본 문부성이 "교과서가 검정 이전에 공개되면 검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해온 탓에 어디에서도 새역모의 교과서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역사교육연대는 우연히 교과서 출판사인 후소샤(扶桑社)의 영업직원이 교육위원들에게 교과서 신청본을 사전 배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사교육연대는 즉시 일본 시민단체를 통해 새역모의 역사교과서와 공민교과서 가운데 역사교과서를 입수했고 2001년부터 준비해온 교과서 내용 분석팀을 즉시 가동시켰다. 양 위원장은 "연구팀을 전근대와 근대 부분으로 나눠 분석했고 결국 검정 결과 발표를 1개월도 남기지 않은 11일 가까스로 그 내용을 공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교과서 분석 결과 발표에는 중국과 일본 시민단체들의 완벽에 가까운 팀웍이 큰 힘을 발휘했다. 양 위원장은 "중국 시민단체는 사전에 교과서를 입수하지 못해 비록 교과서 내용 분석 결과를 같이 발표하지는 못했지만 그 전까지 각종 활동에 동참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양 위원장은 특히 극우파로부터 신체적인 위협을 받는 등 악조건 속에 활동하고 있는 일본 시민단체에게 깊은 감사를 표시했다. 반대로 한국 국민에 대해서는 양 위원장의 불만이 크다. 그는 "역사문제에 대해 국민들이 매우 감정적인 반면, 다른 나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없다"며 "사회 및 학교에서 적절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역사교육연대는 4월5일 일본 문부성의 검정 결과가 발표되면 특별히 구성한 대책팀을 가동시켜 교과서 수정 및 불채택 운동을 펼쳐갈 계획이다. 양 위원장은 "솔직히 2001년에는 경황이 없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측면이 크다"며 "4년 동안 준비해 온 모든 방법을 4~6월에 총동원해 교과서 채택을 최소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최영윤기자 daln6p@hk.co.kr
■ 한중일 공동 역사교과서 5월 출간/ "日은 가해자" 분명히 밝혀
일본 극우단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일제 식민통치를 미화한 2005년도판 역사·공민교과서를 문부과학성에 신청하면서 2002년부터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 학자들이 모여 준비 중인 공동 역사교과서에 새삼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개국 학자 36명이 2002년부터 10여 차례의 토론회를 거쳐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른 공동교과서의 이름은 '미래를 여는 역사'. 각국 역사교과서의 부교재로 사용될 이 공동교과서는 '상대방에게 적대적인 인물은 내세우지 않는다'는 원칙 하에 씌어졌다. 특히 일제의 세력확장을 '제국주의'와 '침략전쟁'으로 규정해 철저하게 일본을 가해자로, 한국과 중국을 피해자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서술됐다. 한국 측에서는 새역모의 교과서를 분석한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가 참가하고 있다. 공동 교과서는 5월18일 3개국어로 번역돼 출간될 예정이다.
한편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竹島)의 날 제정에 이어 새역모의 교과서까지 공개되자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
활빈단 등 10여개 시민단체는 13일 오후 일본대사관 앞에서 공동으로 ‘일본 다케시마의 날 제정, 역사왜곡교과서 규탄대회’를 열고, 대사관 측에 일본 총리 앞으로 보내는 항의문을 제출했다. 고종황제의 손자인 이석씨와 윤봉길 의사의 조카 윤주씨, 김좌진 장군의 손자인 김경민씨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집회에서는 윤씨와 김씨가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폭탄 투하를 재연해 일본대사관에 고춧가루를 뿌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이날 강원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제5회 크레이지 스키·스노보드 대회’에서도 한 참가자가 일제에 맞서 싸운 유관순 열사의 복장을 하고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쓰여진 대형 깃발을 든 채 설원을 달려 눈길을 끌었다. 14일에는 전국무술인연합회가 새역모의 역사 왜곡 교과서에 대한 항의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단지식을 벌일 예정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 일본측 반응/ 日정부 "특정교과서의 문제"
한국에서 증폭되고 있는 일본 후쇼샤(扶桑社) 중학교용 역사·공민교과서 검정신청본의 개악 파문과 관련, 일본 정부와 언론의 대응 및 반응은 한마디로 소극적이다.
일본 정부는 이번 파문이 일본 내에서는 ‘별 영향력이 없는’ 특정 교과서의 검정 문제라는 인식 아래 공식 반응을 삼가고 있는 모습이다. 일본 정부는 파문 이틀 후인 13일에도 일체의 논평을 내지 않으며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고 있다. 일본 정부로서는 이문제가 한일간의 '공식' 외교문제로 비화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다만 최근 ‘근린제국조항’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시모무라 하쿠분(下村博文) 문부과학성 정무관은 11일 중의원 상임위에서 또다시 자신의 발언에 대해 해명해 눈길을 끌었다. 교과서 검정 때 주변 국가를 배려하도록 한 일명 '근린제국조항'이 자학적역사 교육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던 그는 "조항 그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조항이 생긴 이후 강제연행이나 종군위안부 관련 기술이 늘었다가 최근에는 줄었다는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대체적으로 보도를 자제하는 느낌이다. 요미우리(讀賣)신문과 아사히(朝日)신문, 마이니치(每日)신문 등은 문부과학성의 검정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자체 교육위원회에서 신청본이 유출된 사실만을 지적하는 등 사건의 핵심을 피해가는 인상이다. 우파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도 한국 언론들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있고, 일본측 지식인과 공동투쟁도 활발하다는 내용의 서울발 기사를 게재하는 등 역시 핵심을 비켜가는 기사로 일관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 우리측 대응/ 정부 "조용한 외교론 안돼" 강경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에 대한 정부 대응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다. 일본과의 관계에서나 국내적으로나 교과서 왜곡 파문을 ‘조용한 외교’로 넘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적당히 대처했다가는 제2, 제3의 사건들이 일본에서 제기될 수 있고 들끓는 국내 여론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외교통상부는 양국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위치라서 대응 수위를 놓고 고심하고 있다.
정부의 기류는 아주 강경하다. 정부가 설정한 마지노선은 크게 두 가지다. 16일로 예정된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의 ‘독도의 날’ 제정 관련 조례안의 통과 여부와 4월5일 발표될 일본 문부과학성의 교과서 검정결과다.
정부는 마지노선을 넘어서기 전에 일본 정부가 자율적으로 나서 사태를 수습하기를 바라고 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중앙정부가 지방의회의 일에 간섭할 수 없고 교과서 검정은 내정사안"이라는 이유로 미온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어 문제 해결은 간단치 않아 보인다.
정부는 일단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대책을 준비중이다. 우선 독도 문제의 경우 한국의 주권수호와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독도를 외교분쟁지역으로 만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교과서 왜곡 문제는 수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주일대사 소환 등의 추가조치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또 ▦노무현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제기한 일제 식민지배 배상문제 공론화 ▦한일수교협상 문서 추가공개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문제 견제 등 다양한 압박책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의 태도를 지켜보면서 단계별로 대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만 정부는 2005년 한일우정의 해, 한일수교 40주년 등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조성하기 위해 애써온 분위기는 살려가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또 섣부른 강경일변도 대응이 일본 우익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정부 당국자는 "국민 여론과 한일 외교관계 사이에서 고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외교부의 고민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질 분위기가 아니다.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정부가 2001년 1차 교과서 왜곡 파문 때처럼 처음에는 완강하다가 나중에 흐지부지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정부가 차제에 독도, 신사참배, 일제 식민지배 배상 등 주요 사안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정리, 흔들림없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정상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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