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정부는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하고,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독도와 역사 교과서 문제 등이 대두되면서 한일관계는 다시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러한 한일문제의 본질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반성과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일본 극우세력은 태평양 전쟁에서 연합국에 패배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따라서 식민지배에 대해 반성할 것이 없을 뿐더러, 오히려 지신들이 시혜를 베푼 것으로 생각한다. 역사 교과서의 왜곡을 자행하고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고 군사 대국화를 지향하는 여러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같은 인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교육 문제를 당사자인 일본인들이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자국의 역사를 미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주변국가의 역사를 비하하고 왜곡하는 차원으로까지 나아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그 결과는 자칫 또 다시 침략과 전쟁의 수렁에 동아시아를 빠뜨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단순한 과거 집착이 아니라, 참다운 동아시아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미래지향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사회 안에도 일본 극우세력에 동조하면서 식민 지배를 미화하고 친일 세력들을 옹호하는 세력이 있다는 사실이 최근 확인됨으로써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바 있다. 그런 세력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거사 청산노력을 친북 행위로 매도하고 있다. 또 일본 극우 세력들이 식민지 책임을 반성해 온 자국의 역사교과서를 비난할 때 사용했던 ‘자학사관(自虐史觀)’이라는 용어까지도 그대로 차용하는 등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국의 극우 세력 모두 과거사에 대한 반성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간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음을 보여 주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인들 스스로는 못하면서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 청산을 요구하는 모순에 빠져서는 안 된다.
반면에 그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함에 있어 양심적 일본 국민들의 자존심마저도 존중하지 않는 지나친 행동은 오히려 반감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일본인들 가운데는 민족과 국가의 차이를 넘어서 식민 지배를 반성하며 평화주의에 입각해 한일간의 우호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극우집단과 일본의 시민사회를 분리해서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의미가 있고, 구체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사실 일본 극우 세력이 두려워하는 것은 한일 간의 진정한 평화와 우호관계가 성숙되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인들을 자극함으로써 강력한 저항을 유도하고 그 결과 일본의 선량한 시민들로 하여금 반한감정을 갖도록 함으로서 자신들의 세력을 넓히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한일 양국의 양심적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지나친 민족감정을 유발함으로써 지지기반을 넓히려는 민족상업주의적 유혹에서 벗어나 양 국민이 서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도록 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지금은 극심한 대립과 반목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다. 오히려 국가의 경계를 넘어선, 평화를 사랑하는 세력의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일 우정의 해’ 행사는 오히려 확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이렇게 하는 것이 한일 양국의 극우세력을 고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들의 역사왜곡에 맞설 수 있는 차분한 논리와 바른 역사인식을 자라나는 세대에게 가르치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 점에서 한국 근현대사 과목이 선택과목으로 지정돼 반수 가까운 학생들이 아예 배우지도 않는 우리의 교육현실도 우려되는 바 크다.
주진오 상명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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