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부터 함께 공연한 선배의 마지막 공연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다른 작품에 출연하기 위해 연장공연에서 빠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쌓인 정을 어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요 며칠 사이 다음 공연 준비로 얘기도 많이 못나눈 터라, 오랜 만에 술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마치고 들어서는 선배에게 마지막 공연 전에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했더니, "오늘 공연 어땠어? 별 문제 없었지?"라며 태평스레 되묻는다. 그리고 "너 내일 또 연습해야 되잖아. 공연 끝내고 마시자고. 연습 잘하고"라며 분장실을 나간다.
연극은 영화하고 달라서, 작업이 끝난 뒤 결과물이 남지 않는다. 영화야 필름 자체가 작업 결과물이니 언제고 꺼내 볼 수 있지만, 연극은 다시 보고 싶다고 해서 공연을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진 몇 장과 영상기록물 등이 남긴 하지만, 눈앞에 살아 숨 쉬는 공연 자체와 비교할 수 없다.
일 자체가 그렇다 보니, 연극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매우 둔감하다. 오랜 경험을 통해 회자정리를 체득했기 때문일까, 만남의 반가움이나 헤어짐의 아쉬움이 별로 없다. 늘 지금 하는 일과 함께 있는 사람에게 치열할 뿐이다. 연극인들에게 그 치열함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큰 힘이 된다.
크게 보면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오늘 삶의 태도가 어제를 결정짓고 내일을 만들어낸다. 어느 선배의 마지막 공연을 앞둔 날, 삶의 단순한 진리를 새록새록 배운다.
황재헌 연극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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