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고 옅은 분홍색의 띠들이 화면을 수평으로 가로지르고 있다. 색상의 스펙트럼일 뿐 구체적인 묘사가 전혀 없는 추상회화다. 그런데 작품 제목은 아주 구체적이다. '코네티컷 주 월링 포드, 핼시 드라이브 46번지, 우편번호 06492.'
이게 뭘까. 화가가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의 주소다. 옛집의 기억을 색상으로 되살린 것이다. 왜 하필 분홍인지는 알 수 없다. 구체적 재현이 전혀 없으니 다른 색깔이어도 상관 없을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듯 초월적인 추상이 아이러니 하게도 기억이라는 가장 구체적인 경험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1일 로댕갤러리에서 개막한 한국계 미국작가 바이런 킴(44)의 전시회는 이렇듯 추상과 재현이라는, 상반되는 형식의 경계를 단숨에 무너뜨리는 그림들을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고려청자’ 연작에 고려청자는 없다. 눈에 보이는 건 고려청자 유약의 미묘한 빛깔을 다양한 회록색으로 변주한 모노크롬 평면 뿐이다.
뉴욕에서 활동 중인 그는 1993년 휘트니 비엔날레에서 다양한 인종 400명의 피부색을 하나하나 작은 패널에 그린 ‘제유법’으로 크게 주목을 받은 작가. 분홍, 오렌지, 베이지, 검정 등 색상의 조각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모노크롬 추상회화의 전통을 인종차별이라는 정치적 논의로 연결시킨 대담한 시도로 화제가 됐다.
이번 전시는 미국 버클리미술관이 기획한 바이런 킴의 첫 미술관 회고전이다. 2007년까지 미국 5개 도시를 순회하는 이 전시가 작가의 정신적 고향인 한국에 먼저 들렀다.
출품작들은 그가 미국 화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1990년 이후 2004년까지의 것들로, 대부분은 어린 시절 추억이나 사건을 특정한 색채들로 풀어낸 작품이다. 어린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은 그 선생님이 좋아했던 셔츠의 줄무늬로(‘머신스키 선생님-첫 짝사랑’) , 한 살 배기 아들의 초상은 콧날·입술·손목 안쪽 등 아들의 몸에서 스물 다섯 개 서로 다른 부위의 피부색깔 패널(‘열두 달 된 에멧트’)로 남았다.
2000년 이후 최근작인 ‘흰색 그림’ 시리즈나 ‘맑은 하늘색’은 일종의 풍경화로 하늘을 향한 그의 관심을 보여준다. 파란 하늘에 구름이 지난 흔적 같은 게 언뜻 보이기도 하는 이 그림들은 창백한 색채의 무리가 섞이거나 풀어지면서 배회하는 듯한 화면으로 투명하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객들은 벽에 걸린 단일 색상의 평면 작품들을 보면서 어리둥절 할 수 있다. ‘어, 이게 무슨 집 그림이야, 혹은 이게 무슨 사람 그림이야, 대형 색종이 같은데?’ 하고 말이다. 좀 더 친절하고 친숙한 방법들이 수두룩한데 왜 그렇게 그렸을까. 여기서 작가의 말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추상 모노크롬 회화에서 정말 매력적인 점은 내용상 작품을 양 극단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처음에 보면 단순한 빨간 색 사각형이다. 다시 보면 그것은 빨간 우주다.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기도 하다."
풍요롭고 입체적인 경험들을 차갑고 납작한 추상 안에 가둬버린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가장 추상적인 형식이 가장 구체적인 사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 아무 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전시는 5월 8일까지 계속된다. (02)2259-7781
오미환기자 mhoh@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