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한류’ 열풍은 세계화 틀 안에서 국경을 넘은 문화소통, 한국 대중문화의 일상적인 향유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일본인 히라타 유키에(平田紀江·32)씨가 여성의 관점에서 ‘한류’ 열풍을 분석하고 전망한 책 ‘한국을 소비하는 일본-한류, 여성, 드라마’(책세상 발행)를 냈다. 그 동안 ‘한류’과 관련보도와 연구들이 문화산업적 접근에 치중해 정작 그 중심에 선 일본 여성들을 단순한 소비자로만 취급했다면, 그는 ‘여성’을 키워드로 삼아 ‘한류’ 열풍의 배경과 전개과정을 살피고 향후 전망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히라타씨는 책을 쓰게 된 동기로 여성이자 ‘한류’ 팬으로서 느낀 "분노와 억울함"을 들었다. "한류 열풍에 대한 일본사회, 특히 미디어의 반응을 보면 40, 50대 ‘오바팬’(아줌마팬)은 소비에 미친 여자들, 저 같은 20,30대 젊은 여성들은 한국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하는 여자들로 취급되곤 합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그가 만나본 한국인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가 한국을 알게 된 것은 대학(도쿄 성심여대 영문과)에서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택하면서부터. "중국어보다 하는 사람이 적어 점수 받기 쉽다는 소문에 끌려" 시작한 한국어 공부는 연세대 한국어학당 1년 연수로 이어졌고, "한국을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에 2년간 공무원 생활을 접고 2001년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런 문제의식으로 석사논문에 한국을 관광한 일본 20,30대 여성들이 한국문화를 폭 넓게 수용해가는 과정을 분석해 담았고, 이번 책도 그 논문을 한단계 발전시킨 것이다. 히라타씨는 책에서 ‘한류’ 열풍이 ‘겨울연가’를 계기로 폭발하긴 했지만, 이미 90년대부터 꾸준히 한국을 찾고 한국 문화를 즐겨온 마니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한다. 그는 또 ‘기생관광’이 주류였던 일본인의 한국관광이 88올림픽을 전후해 여성 관광객이 느는 등 변화한 과정, 3편의 한·일 합작드라마 내용이 모두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순애보’였던 이유 등을 분석하면서 ‘일본 여성들은 양국간 역사문제나 갈등을 완화시키는 존재로 재현되고, 양국 자본과 권력의 필요에 따라 도구적으로 쓰여졌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히라타씨는 그러나 "양국 정부나 자본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주체적으로 한국문화를 향유하는 여성들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했다. "‘겨울연가’ 관광에 네 차례 참여하면서 만난 20~70대 일본 여성 30명을 심층 인터뷰했어요. 그들은 관광 후 모임을 만들거나 문화센터 등을 찾아 한국문화를 폭 넓게 배우고 즐기고 있었어요."
그는 ‘한류’가 반짝 열기로 끝날 수 있다는 일각의 전망에 대해 다른 의견을 냈다. "드라마 한 두 편이 아니라 다양한 한국문화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단계로 나가고 있다고 봐요. 미국가수 누가 떴다고 ‘미류’(美流)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