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서 ‘출산율’을 심각한 위기로 인식한 건 불과 3년 안팎이다. 인구학자들은 왜 90년대에 급격한 출산률 하락을 예측할 수 없었을까. 현재 정부가 내놓고 있는 출산장려대책이 과연 ‘아기 더 낳기’로 이어질까. 현재의 저출산이 10년내 한국의 경제구조를 무너뜨릴 것이란 미래예측은 과연 타당한가. 궁금증을 풀기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 최선정 회장을 만났다.
"1990년대는 우리사회의 변혁의 시기였습니다. 지속적인 경제성장, 민주화의 진진전, 세계화의 바람….이런 사회변화가 결혼 연령을 늦추고 출산율을 감소시켜 사회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란 예측은 1990년대 중반엔 나왔어야 합니다. 현재의 심각한 저출산 위기는 경제위기 직후인 1990년대 후반엔 충분히 예측가능한 것이었지요."
소장파 인구학자인 조영태(34) 서울대보건대학원 교수는 선배 인구 학자들의 저출산 대책이 더 빨리 시작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텍사스대에서 인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유타주립대 교수를 거쳐 작년 여름부터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국내 보건대학원 교수로는 유일하게 인구학을 전공했다.
조교수는 IMF위기를 급속한 출산율 위축의 전환점으로 본다. "97년 후반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는 엄청난 규모의 청년실업을 양산했죠. 대규모의 경제개혁은 50~60대 초반의 경제활동 이탈과 위축을 가져왔습니다. 이들이 바로 청년실업을 겪었던 20대의 부모 세대였지요. 본인들의 구직난, 부모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룰 것이란 예측은 충분히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는 현재 여성의 출산기피가 모든 사회계층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나, 원인은 경제적 지위에 따라 다르다고 말했다. "경제적으로 열악한 여성은 혼인과 출산의 경제적 비용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여성은 본인의 사회참여, 여가 및 자기개발을 위해 출산을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젊은 여성의 출산율 감소는 부모세대의 영향도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수십년간 가사노동 출산 육아만을 담당하던 어머니들에게 최근의 여권신장 분위기는 본인들의 삶에 회의를 품게 했다"면서 "손주의 육아를 맡기보다 늦게나마 자신의 삶을 찾고 싶어했고, 본인은 불가능했지만 딸만은 좀 더 나은 삶, 즉 사회참여를 하도록 부추김으로써 젊은이들의 출산기피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의 생활패턴도 출산에 나쁜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사회활동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풍토에서 저녁 6~7시까지만 가능한 탁아시설론 육아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24시간 어린이 집도 생겼지만, 하루종일 아이를 맡기는 것은 용납하기 어려운게 우리 정서"라면서 "조부모에 의한 양육도 아이 하나 이상은 현실적으로 어렵고, 형제 자매가 부모에게 양육을 의지한다면 한 자녀 이상 출산 장려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출산 패턴은 20여년 전부터 저출산 고민에 빠진 유럽과도 다르죠. 여성의 교육수준 향상에 따른 노동참여 욕구 상승, 이로 인한 출산 및 육아 기피 등 저출산의 원인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그러나 유럽은 가임기 여성의 출산은 늦은 결혼으로 출산을 ‘연기’하는 측면이 강한 반면 우리나라 여성은 결혼이 늦을 경우 아예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는 20대 후반~30대 중반에 집중된 우리나라 혼인과 출산의 연령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출산 포기가 점점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복지부 의뢰로 한국인구학회가 발표한 적정인구(4,800여만명)는 과연 적정 수준인가. "인구학회의 연구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변수도 다양하고, 사회적 합의도 필요한 작업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인구가 조금 줄어들어도 괜찮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과 위기는 너무 많은 인구 수로 비롯된 경쟁때문이니까요. 경제사정이 좋아지면 혼인과 출산 연령도 낮아지고, 출산율도 다시 올라갈 것입니다."
"10일 ‘혼자는 싫어요’라는 현수막을 협회 건물에 내걸었습니다. 아들 딸 둘도 좋고, 셋도 좋다는 메시지입니다."
1970~1980년대 가족계획 사업에 앞장섰던 대한가족보건복지협회(%전 대한가족협회).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60년대)는 극단적인 표어로 시작,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70년대)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부럽다’(80년대)며 한 자녀 낳기를 외쳤던 가협이 가족계획 전략을 완전히 수정했다. 선봉장은 2004년 12월 취임한 최선정(61)협회 회장이다.
"동쪽으로 달리던 협회가 갑자기 서쪽으로 방향 틀기는 쉽지 않지요. 조직의 갈등이 없을 수 없지요." 그는 "많으면(인구가) 줄이고, 적으면 늘려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방향은 과거와 틀리나 대상은 같다"고 말했다. 지난 연말 이사회에서는 정관에 사업 목표로 제시됐던 가족계획이란 용어를 삭제했다. 자녀 수 늘리기나 터울 조절도 가족계획에 포함되지만, 일반인에게 가족계획은 워낙 적게 낳자는 의미로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외동이를 둔 부모가 그려진 협회 로고도 바꿀 예정이다.
최회장은 "사실 협회에 몸담았던 사람들은 인구억제에 일조했다는 자긍심이 대단하지요. 저는 이런 자부심도 과장된 것이고, 그렇다고 지나친 피해의식은 갖지 말자고 직원들에게 강조합니다. 물론 강력한 인구억제로 심각한 저출산율에 이른 것은 우리의 원죄라 할 수 있지요"라고 말했다.
"90년대 초 이미 몇몇 선각자들이 가족계획 사업의 축소론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협회가 위기를 기민하게 감지하지 못하고, 빨리 변신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지요. 관성의 법칙이라고 할까요? 출산 억제를 중단해야 할 필요성은 깨달았으나, 사업 방향을 한 순간에 바꾸기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주업무가 인구 억제인데, 정부가 채찍을 들지 않았는데, 조직 생리상 협회가 먼저 바뀔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누가 경제가 이렇게 빨리 성장하고, 여성의 사회참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1980년대 가협은 정규직원 600여명에 전국 가족계획 어머니회까지 합하면 1,000여명이 넘는 방대한 조직이었지만, 99년 이후 두 차례 구조조정 끝에 현재 직원은 370여명으로 줄었다. 한해 100억원이 넘던 정부보조예산도 99년부터 중단됐다. 가족계획협회가 가족보건복지협회로 개명한 것도 같은 시기다.
존립 근거가 점점 희박해지면서, 존립 자체가 위기로 비쳐지지만, 그는 ‘결자해지론’을 내세웠다. "묶은(가족계획사업) 사람이 풀어야지요. 어디를 어떻게 묶었는지, 묶지도 않은 사람이 어떻게 압니까."
그는 "협회 사업의 70%는 저출산 대책, 나머지 30%는 고령사회 연착륙을 위해 전개해 나가겠다"면서 "암검진 등 다른 보건협회와 겹치는 %B사업분야는 미련 없이, 서서히 철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 노동부 장관을 역임한 그는 "정부의 인구대책이 아직 어설프고 공허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종합적이고 무르익은 대책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송영주 의학전문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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