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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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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7년 전 일이네요. 고교 졸업 직전의 겨울이었습니다. 다행히도 대학에 합격했고, 가슴은 한껏 부풀어 있을 때였습니다. 모아 둔 용돈으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무작정 버스를 잡아타고 시퍼런 바다가 있는 동해안으로 향했습니다. 사회과부도에서 찢어든 한반도 중부지역 지도 한장 달랑 들고서요.

여행 코스는 관동팔경. 교과서에 실렸던 ‘관동별곡’이 여행의 모티프가 됐죠. 딱히 아는 곳도 없었습니다. 통천의 총석정, 고성의 삼일포는 북한 땅이라 포기하고 간성의 청간정부터 낙산사, 경포대, 삼척의 죽석루 등을 거쳐 울진의 망양정과 월송정까지 동해를 훑어 내려왔습니다. 장거리는 버스를 탔지만 상당 거리를 걸어다녔습니다. 왜 그렇게 찬바람 속을 걸었는지. 발바닥엔 물집이 잡히고 입술 또한 부르텄습니다. 나름의 성인식을 이 겨울여행에서 찾으려 했는지 모릅니다.

그 때 울진의 망양정에 처음 올랐습니다. 그리고는 예서 보이는 장쾌한 바다에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정자에 앉아 긴 호흡의 파도 소리를 들으며 초콜릿을 안주 삼아 쓰디 쓴(그때는) 소주 한 모금을 겨우 삼켰습니다. 어른이 되는 두려움을 그렇게 망양정에서 달랬습니다.

그 이후 울진을 지나는 길이면 언제나 망양정을 올라 봅니다. 그리고 그 때의 새파랗던 생각들을 떠올리며 지금의 나태함을 추스려 봅니다.

이번 울진 길에서는 까까머리의 어린 시절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회사 선배 한 분입니다. 남자에게 어울릴지 모르지만 ‘(심성의)결이 고운’ 선배입니다. 제가 여행기자가 되기 전에 이미 방랑벽을 심어 준 절친한 여행 동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선배가 최근 갑자기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마흔이 넘은 나이임에도 더 늦기 전에 새 인생을 살아보겠노라고,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힘든 길을 자청해 떠났습니다.

10여 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떠나는 그 길, 얼마나 두렵고 막막했을까. 17년 전 망양정에 섰던 치기 어렸던 제 모습에 비춰 선배를 떠올려봤습니다.

"힘내세요. 형."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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