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원작으로 하되 새로운 색을 입혀, 소설과 다른 맛을 살린 두 편의 영화가 잇달아 개봉한다. 프랑스 소설가 세바스티앙 자르피조의 베스트셀러 소설 ‘아주 긴 일요일의 약혼’을 영화화 한 ‘인게이지먼트’와 무라카미 류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식스티 나인’이다.
■ 인게이지먼트/ 사랑의 힘은… 죽음조차도 넘어서는 집요함!
‘전쟁을 배경으로 한 비극적이면서 아름다운 로맨스’ 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극장에 들어섰다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그녀의 집요함에 입을 다9물 수 없다. ‘아멜리에’와 ‘히 러브스 미’에서 ‘엽기적이다-사랑스럽다, 사랑한다-스토킹하다’가 백지 한 장 차이임을 보여 줬던 오드리 토투. 그녀의 집요함은 ‘인게이지먼트’에서는 정점에 달해 죽었다는 사람까지도 다시 살아나게 한다.
죽음을 앞에 둔 이는 보통, 부정-분노-타협-우울의 단계를 거쳐 결국 죽음을 인정한다. 자신의 죽음 뿐 아니라, 연인이나 가족의 죽음에 대한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인게이지먼트’의 마띨드(오드리 토투)는 약혼자의 죽음을 끈질기게 부정한다. 영화에서 설명하듯 낙천적인 성격 때문일 수도, 타고난 끈질김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큰 사랑의 힘 덕분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달을 즈음, 자해 행동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5명의 프랑스 병사가 비무장 지대에 버려진다. 그 중 마띨드의 애인인 마네끄(가스파 울리엘)도 있다. 독일군과의 결전 도중 마네끄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지만 마띨드는 믿지 않는다. 살아 남은 동료들을 찾아 나서 묻고 또 묻는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마네끄는 살아 있었나요? 살아 있었죠?"
영화는, 놀라운 취재력을 바탕으로 마띨드가 약혼자를 찾아 내는 여정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전쟁의 부조리함을 장대하게 담아낸다. 해피엔드로E 끝나는 영화를 볼 때마다 감출 수 없는 ‘과연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을 떠 올려 볼 때, 불손한 상상이 끼어 든다. 거짓말이 통할 아주 작은 틈도 없을 것 같은 마띨드의 집요함이 좀 걱정된다. 아마도 다소 엽기적인 캐릭터로 자리 잡은 오드리 토투의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전작들에서처럼 오드리 토투는 깜찍함을 발산하며 "그래도 나는 귀여우니깐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 귀여움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것으로 설정된 원작과 달리 오드리 토투는 시종일관 뒤뚱 뒤뚱 뛰어다닌다. 장 피에르 주네 감독과 오드리 토?%5貂? ‘아멜리에’에 이어 만난 작품이다. 원제 ‘A Very Long Engagement’. 11일 개봉.
■ 식스티 나인/ 청춘의 힘은… 힘든 시대라도 즐겁게 사는 것!
전국적인 학생운동(전공투)으로 일본 열도가 뜨겁던 1969년, 미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호가 나가사키의 사세보 항에 들어설 즈음 정치에 눈을 뜨게 된 고교생이 학교를 바리케이트로 봉쇄하고 투쟁하다 장렬하게 체포되는 이야기, 라고 하면 거짓말이고, 영화 ‘식스티 나인’은 시종일관 장난스럽다. 폭소가 터져 나오는 에피소드가 계속되고 만화같이 신선한 장면이 이어진다.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거야." 혼란한 세상을 향해 진진지하게 대응하는 대신, 모든 일을 즐겁게 받아 들이는 것이 ‘식스티 나인’의 주인공 켄(쓰마부키 사토시)과 아다마(안도 마사노부)의 방식이다. 학교에 바리케이트 치고 무기정학 처분을 받고,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자극받아 어른들의 반대를 꺾고 록음악과 자유가 넘쳐 나는 페스티벌을 연다는 다소 과격한 이야기임에도 영화 속 소년들은 늘 즐겁다. 전국체전을 대B비한 매스게임 연습에 동원되고, 고압적인 선생님과, 흑인 병사와 나뒹구는 또래 여자들이 있어도 세상에 제대로 ‘골지르는’ 법은 즐겁게 살자이다.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은 ‘식스티 나인’을 원작의 정치적인 뉘앙스는 최대한 뺀 청춘물 분위기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대단한 두 배우를 기용한 것에 대해 "원작은 무라카미 류의 자전적 이야기이지만, 무라카미 류처럼 생긴 사람이 나오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이라며 웃음으로 받아 넘겼다.
엔터프라이즈 투쟁, 도쿄대 야스다 강당 공방전 등 당시 정치적 상황은 물론이고 매디슨 스퀘어 가든 스포츠백, 와키마쓰 고지의 에로영화 등 당시 일본문화를 엿볼 수 있는 복고적인 소재도 등장한다. 원작에서는 켄이 연인 마쓰이에게 버림 받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영화는 둘이 결혼 후 미국으로 이민 갔다는 해피엔드로 끝맺는다. 원작은 지난해 국내에 정식으로 번역, 출간돼 지금까지 2만부 가량 팔린 인기 소설이다. 25일 개봉.
최지향기자 misty@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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