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란 낱말은 이제 삭고, 낡은 느낌을 준다."
원로 소설가 서기원(75·예술원 회원·사진)씨가 계간 '대산문화' 봄호에 '권력의 정당성과 개혁'이라는 제목의 에세이를 기고했다. 소설 '왕조의 제단'으로 조선 중종조의 개혁가 조광조를, '광화문'으로 흥선대원군의 일대기를 그린 바 있는 그는 이 에세이에서 역사 속 대표적 두 개혁가와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비교하고 있다.
서씨는 조광조의 개혁이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실패한 원인을 급진성과 개혁세력의 도덕6성 상실에서 찾고 있다. 그는 중종반정으로 우월적 지위를 획득한 정국공신들에 대해 옥석을 가려 훈공을 깎은 조광조의 ‘삭훈(削勳)’을 참여정부의 과거사 정리에, 어질고 덕 있는 인재를 과거를 통하지 않고 등용시킨 ‘현량과(賢良科)’를 ‘코드 인사’에 견주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이상주의와 급진성으로 왕의 반감을 사게 되고, 훈구세력의 반격까지 당하면서 실패한다(기묘사화). 현량과로 등용된 인재들이 세력화하면서 일종의 자아도취에 빠져 자만과 독선에 흐른 점도 치명적이었다고 서씨는 분석했다. 서씨는 "삭훈으로 기성세대의 생존기반을 무너뜨려 타협과 공생의 여지를 없앴다는 점, 현량과가 패거리의 결속과 세력강화로 간주되어 도덕성을 상실한 점 등이 조광조 개혁실패의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적었다.
서씨는 대원군의 개혁에 대해서는 정치·사회적 개혁의 강도와 범위 면에서 조광조보다 한 수 위였다고 평가한다. 안동 김씨 일색이었던 집권층 물갈이와 양반들의 특권제한, 적서차별의 철폐 등이 그 예인데, 서씨는 "겉보기에 놀랍고 화려한 이런 정책들은, 서민들의 갈채를 받았으나 이미 그 속에 실각의 씨를 배태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름 아닌 ‘경제정책의 실패’ ‘인사의 실패’ 등이 그것이다. 경복궁 중건과 원납전 당백전 등의 발행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진데다, 소임을 감당할 능력이 없는 남인 북인 등의 인물을 중책에 기용했다는 것이다. ‘서원철폐’도 한 몫을 했다. 대외정책에서는 쇄국으로 극단의 보수노선을 채택했고, 대내적으로는 극단적인 개혁정책을 추구한 대원군에게 서원철폐는 지지기반의 붕괴로 이어졌다.
두 개혁의 실패는 그 반작용으로 말미암아 역사상 퇴보를 가져왔다는 것이 서씨의 결론. "지나친 도덕주의적 관념론이 현실정치의 요구를 억압하게 되어, 정치구조의 경직화와 연결되어 현실적응능력을 감퇴시킨 인과관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소설을 쓰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을 현 정부의 개혁정책을 염두에 두고 정리해본 것"이라며 "이데올로기의 관념론에 얽매인 개혁은 실효성을 얻을 수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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