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기억을 모조리 잊을 수 있는 망각의 능력은 축복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플라이’ ‘M. 버터플라이’ 등에 이어 곤충을 제목으로 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2002년작 ‘스파이더’는 인간이 실제로 곤충으로 변해가며 겪는 공포를 그렸던 ‘플라이’보다도 더 끔찍하다. 정신이 거미줄처럼 얽혀 버린 한 남자의 고통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이되는 탓이다. 지워지지 않는 어린 시절의 상처로 피폐해진 주인공이 겪는 정신과 육체의 아픔이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어린 시절, 눈 앞에서 사랑하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손에 살해된 후 스파이더(랄프 파인즈)는 거미줄처럼 꼬여 들어간다. 성인이 된 후 정신병원에서 나와 사회복귀시설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스파이더는 우물우물 의미 없는 말을 내뱉고,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와 가방에 가득 채우고, 멍한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헤어나오지 못하는 어린 시절의 상처를 보여주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과거를 플래시백 형식의 회상 장면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 공포에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목격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식이다. 과거와 현재는 끊임 없이 교차하며 환상적인 이미지를 뿜어 낸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차용한 흔적이 영화 곳곳에서 엿보인다. 11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 개봉. 18세.
최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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