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이 지난달 22일 퇴임했을 때 그가 옛 일터로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다. 1993년 자신이 설립한 아미티지 어소시에이츠 (Armitage Associates)가 그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지 W 부시 1기 정부 때 공직으로 다시 나오기 전까지 그는 국제관계나 안보 관련 자문과 비즈니스를 주로 하는 이 회사 회장을 맡았다. 하지만 아미티지는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아미티지 인터내셔널이라는 새 회사를 차릴 계획이다. 이 회사는 그의 강연 일정 관리나 출판 계약을 주로 맡게 될 것이라고 한다. 고객 중에 이라크 공사 수주를 맡고 있는 업체가 포함된 아미티지 어소시에이츠와는 일의 성격이 판이하다.
그가 딴 살림을 차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뉴스위크 최신호는 그를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후임을 노리는 후보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아미티지는 친구들에게 자신을 유혹하는 자리가 있다면 국방부라고 말했다고도 전했다.
부시 정부 1기 내내 아미티지 부장관과 대립했던 럼스펠드 장관이 올해 말쯤 물러날 것이라는 예상이 워싱턴에 나돈 지는 오래다. 이라크 전후 혼란과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사건의 여파로 이미 그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아미티지는 그 빈 자리가 자신에게 돌아올 기회를 엿보면서 아예 이해충돌의 시비가 생길 수 있는 싹을 키우지 않기로 한 셈이다.
그런 그에게서 위선의 그림자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권투선수가 링에 오르기 전 몸 관리에 매달리듯 공직에 뜻을 두려면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은 미국식 사고방식의 당연한 반응이다. 공직에 부여된 권한과 사적 이해의 충돌을 피해야 한다는 이른바 ‘이해충돌 회피’원칙은 미국 공직 윤리의 핵심을 이뤄왔다. 고위 공직자나 의원이 정부와 의회의 세세한 이해충돌 관련 규제 규정을 빠져나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위직 지명을 받고도 검증 과정에서 이해 충돌의 문제점이 발견돼 낙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난해 12월 국토안보부의 초대 장관으로 지명됐다가 스스로 물러선 버나드 케릭 전 뉴욕 경찰청장 사례는 미국 사회가 공직에 얼마나 엄격한 칼을 들이대고 있나를 보여주었다. 케릭 낙마의 표면적 사유는 불법 이민자 고용 문제였지만 그가 결정적으로 백기를 든 데는 국토안보부와 거래하는 스턴건 제조회사 재직시 사적 이득을 취한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었다.
로마의 격언대로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장이 될 수 없다. 공직자가 자기가 수행하고 있는 일과 개인적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 도덕적 의무에 둔감하기 쉬운 것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였던 이헌재 부총리가 결국 사퇴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해 충돌 문제를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중요성을 다시금 떠올린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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