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의혹에 휘말려 낙마한 이헌재 전 부총리는 사실 정통관료는 아니다. 행시 출신으로 재무부에 들어가 율산파동으로 10년만에 공직을 떠난 후 거의 20년간 민간부문을 전전했다. 자비로 미국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재벌기업에서 몇 년, 그리고 신용평가회사 사장으로 수 년을 보내고, 정부산하 위원회와 연구기관의 자문위원으로, 법무법인의 고문으로 일했다.
1990년대 말 환란 후 그가 초대 금융감독원장, 이어 경제부총리로 발탁된 것은 파격이었다. 80년대 이후 경제사령탑은 거의 대부분 공무원 명함 말고는 다른 명함을 가져본 적이 없거나, 학교와 연구실에 파묻혀 있던 학자 출신이었다. 환란이후 시장자본주의의 급류가 그를 ‘스타’로 만들었다.
그는 서울대 법대 학생 때 시위에 참가해 무기정학을 받은 ‘훈장’도 있고, 그러면서 법대를 수석으로 나온 ‘메달’도 갖고 있다. 그는 분명히 탁월한 현실주의자다. 1997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를 도왔는데도 김대중 정부에서 스카우트된 것도 발군의 현실감각과 재능 때문이다. 좌파 성격을 띠고 출범한 노무현 정부에서 다시 경제부총리로 등용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결국 축구경기의 리베로, 사회의 소방수 같은 인물인데, 관료출신으로 그렇게 다채롭게 사회경험을 한 이는 없을 것이다. 그의 힘은 거기서 나왔다. 정통엘리트관료들이 한 코 죽을 수 밖에 없는 다양한 경험과 경력, 더욱이 시장주의가 득세하면서 그의 민간 경력은 독보적으로 빛이 나는 것이었다. 재산공개 당일 모든 언론이 그의 불어난 재산을 ‘부인 덕분에’ 정도로 가볍게 다루었던 것도 그래서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그의 퇴장은 이제 우리 사회에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공직자 재산’ 문제다. 이 전 부총리는 땅을 새로 산 것도, 감추었다가 발각된 것도 아니다. 20여년전 일반 시민이었을 때 사놓은 땅을 작년에 판 것이 화근이었다. 팔지 않았으면 주목 받을 것도 없었다. 여러 의혹들이 제기됐지만 매입 당시 부인의 위장전입 사실 말고는 딱히 입증된 것이 없다. 그는 스스로 억울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국민여론도 분분하다.
본인이 "억울하다"고 하거나 주위에서 "딱하다"고 할 정도로 논란이 빚어질 소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재산검증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었는지 우리 사회는 자문해 보아야 한다. 이 전 부총리는 그 자신 "가진 부동산이 많은데…"하며 지난해 부총리직 제의를 고사했다는데, 그를 굳이 끌어다 앉힌 것은 바로 이 정부다.
둘째는 우리 경제 진로에 관해 이 정권에 던진 숙제다. 이 전 부총리가 아무튼 자진 사퇴한 것, 그리고 인사권자가 뒤늦게라도 조치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지만 다음이 문제다. 어떤 금융권 관계자는 말한다. "이 정권의 경제정책이 실제 이상으로 경기부양적이고, 시장친화적으로 해석돼 온 것은 상당부분 이 전 부총리의 이미지 덕분이었다."
청와대는 정책기조에 변화가 없도록 적임자를 골라내겠다고 하지만, 이 전 부총리와 같이 관료조직과 민간의 생리를 동시에 꿰뚫어 보면서 고도의 정책곡예를 할 수 있는 이는 사실 찾아보기 힘들다. 성장을 원하는 국민,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국민, 태생적으로 개혁성향을 버릴 수 없는 권부의 측근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지 않고 시장친화적 정책을 펴나갈 수 있는 조화력과 돌파력을 겸비한 인물을 찾지 못하면 이 정권은 위험해진다.
송태권 경제과학부장 songt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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