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에 있는 서울광염교회는 1992년 설립 이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별난 원칙이 있다. ‘교회 예금계좌에 100만원 이상을 쌓아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고정비를 제외한 교회 예산의 대부분을 사회구제와 선교, 장학사업에 쓰고 있다.
출석교인만 2,600여명으로 서울 강북지역에서는 손꼽히는 대형 교회인데도 아직 번듯한 교회건물도 없다. 아파트 단지 부근의 상가건물을 전전하며 셋방살이만 고집하고 있다. 건물을 짓는 데 헌금을 쓰기보다는 그 여력으로 가난한 이웃을 돕고 사회를 섬기겠다는 뜻이다. 목적헌금이나 특별헌금이 따로 없고 부활절이나 성탄절, 추수감사절 따위의 절기헌금은 전액 불우이웃돕기에 쓴다. 소년소녀가장 등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무상으로 마련해준 ‘사랑의 집’이 벌써 16호나 된다.
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을 창설한 이 교회는 요즘도 재난이 발생한 지역은 어디든 달려간다. 대구지하철화재 사고 때는 천막을 치고 구호활동을 했고 동남아 지진해일 때도 교인들을 이끌고 남보다 먼저 현장봉사에 나섰다. "‘광염(光鹽)’이란 이름 그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를 일구는 것"이 교인들의 꿈이자 비전이다.
자(自) 교회 이기주의는 일반적으로 한국 교회를 일컫는 부정적 수식어 중 하나다. 하지만 요즘 개신교계 한 켠에서부터 교회의 울타리를 없애고 담을 허무는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신도들만의 영적 친목단체가 아니라 ‘디아코니아(이웃에 대한 사랑과 섬김을 뜻하는 헬라어)’를 실천하는 진정한 교회로, 닫힌 교회에서 열린 교회로 환골탈태하려는 몸부림이다.
부산의 호산나교회는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고아 입양 운동을 통해 실현해가고 있다. 교회 안에 입양담당 목회자(황수섭 목사)까지 두고 교인들9과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입양 전문사역을 편 지 벌써 5년째. 현재까지 교인들 가운데 13 가정이 18명의 오갈 데 없는 고아들을 공개 입양했다. ‘공개 입양’이란 입양문화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입양가정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개적으로 주위 사람과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가 주관하는 입양가족 모임과 전문상담, 목회자를 위한 입양세미나 등은 이제 서울의 대형교회들도 배워갈 정도이다.
고등학생 자매를 둔 가장이지만 스스로 쌍둥이 고아형제를 입양해 돌보고 있는 황수섭(48) 목사는 "입양은 소중한 생명에 대한 사랑의 실천이라는 점에서 선교만큼이나 값진 일"이라며 "고아 수출국의 불명예를 벗어버리기 위해서도 한국교회가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예배당을 365일 개방하는 교회들도 많다. 서울 영등포구 도림교회는 문맹자를 위한 한글학교, 65세 이상 주민의 여가를 위한 노인학교, 맞벌이 부부 자녀를 위한 방과후 교실, 장애인 자녀 주간보호센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교회 시설을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문화사역을 표방하는 경기 평촌의 새중앙교회는 대예배당 한 쪽에 2만여 권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을 꾸며 주민들에게 개방하고, 예배당을 연극이나 뮤지컬 등을 위한 공연장으로, 아파트 주민을 위한 월례회 장소로 빌려주기도 한다.
교회 자산의 ‘사유화’를 거부하며 아예 예배당을 갖지 않는 것도 개혁의 큰 흐름이다. 이는 한국교회가 헌금만 모이면 예배당 확장에 온 힘을 쏟은 결과 실제로 나눔과 섬김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한 자성에서 비롯된 움직임이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지역사회교육회관을 주일마다 예배닺당으로 빌려 쓰는 디딤돌교회는 교회 규약에 ‘예배당 전용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는다’고 명문화했다. "전체 예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물 운영·관리비만 절약해도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밖에 대형교회인 주님의 교회는 정신여고에 강당을 지어주고 집회 시에만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고, 경향교회(경향고) 다일교회(대광고) 한영교회(한영고) 삼일교회(숙명여대) 등도 같은 목회철학 아래 학교 강당을 예배실로 빌려 쓰고 있다. ‘교회 건물 안 갖기’를 표방하는 언덕교회의 박득훈 담임목사는 "외형적 건물 중심, 성전 중심의 목회를 극복해야만 한국교회가 사회 속에서 바르게 서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 교회당 없는 디딤돌교회 윤선주 목사/"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신앙공동체"
‘교회당 없는 교회’. 지난해 11월 창립예배를 드린 디딤돌교회는 건물과 외형 중심의 세속적 목회를 거부하는 대안교회이다. 일요일이면 텅 비어 있는 구청 사회복지관이나 문화센터 등은 겉모양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참 예배의 공간이자 목회의 터전이다. 디딤돌교회를 개척한 윤선주(39·사진) 목사는 "교회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위해서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라며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놓는 참 신앙의 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이 이 시대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교회 건물 갖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지금껏 한국교회는 소외된 이웃과 사회적 약자를 돕기보다는 교회 자체의 몸집 불리기에 치중해왔다. 교회가 마치 예배당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교인들은 그들만의 폐쇄적인 친목단체로 전락했다. 예배당 건립이나 유지에 들어가는 예산만 줄여도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디딤돌교회의 경우) 건물 유지비가 따로 없으니 전체 예산의 30% 정도는 사회구제에 쓸 수 있다."
-예배당이 없어서 불편한 점은 .
"기성교회에 익숙한 교인들이 왔다가 낯설어 그냥 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성도들의 모임 자체가 교회이다. 중요한 건 건물이 아니라 얼마나 참된 신앙의 공동체를 이루느냐이다. 교인 중에는 인터넷을 통해 캐나다, 호주에서 예배를 드리는 분도 있다. 우리는 지금 성전이 없고, 앞으로도 성전을 갖지 않을 것이다."
-대안교회 모델이 한국에 뿌리내릴 수 있다고 보나.
"기성교회의 잘못된 틀을 벗고 바른 교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한국교회의 미래는 그만큼 희망적이다."
홍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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