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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억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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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억울함

입력
2005.03.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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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차게 불거진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제수장에서 물러난 이헌재 전 부총리겸 재정경제부장관은 사임문을 통해 복잡한 감회를 술회했다. 모든 사태를 ‘부덕의 소치’로 받아들이고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물러난다는 결연한 의지가 읽힌다. 동시에 "이제 직을 떠나면서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저와 처는 투기를 목적으로 부동산매매는 하지 않았습니다"란 대목에선 억울함을 내비쳤다. 20년 전 부동산 등기과정에서 편법의혹이 일어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하면서도 부동산 매각과정에서 어떤 편법이나 이면거래가 없었음을 밝혀, 억울함의 정도가 옅지 않음을 드러냈다.

■ 억울함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을 수없이 겪게 되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화병에 휩싸이기도 한다. 중앙대 심리학과 최상진 교수는 한국인 화병의 심리학적 개념화를 시도한 논문에서 억울한 마음을 ‘자신이 부당한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에 대해 수용하기 어려운 마음의 상태’로 정의했다. 그리고 억울함의 세가지 요소로 피해 당사자가 자신이며, 피해의 성격이 부당하고, 그 결과를 기정사실로 수용하는 데 대한 거부감으로 정리했다.

■ 보통 사람들에게 억울함이란 규명되고 해소되어야 할 마음의 짐이다. 이 짐을 내려놓지 못하면 화병에 걸리기 쉽다. 그러나 공직자의 경우는 다르다. 당사자는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겠지만 지도자나 국민의 입장에선 의혹이 불거진 것 자체가 지도력과 신뢰의 상실로 비친다. 경제계로부터 지지와 신임을 받은 능력 있는 경제부총리였지만 재산공개를 계기로 드러난 투기 의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결정적 흠결이 되고 말았다. 그 자리가 ‘부동산과의 전쟁’을 수행해야 할 경제수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 지금으로선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지리한 진실규명 작업 후에도 진실은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음을 안타까워 할 수 있지만 억울함이 해소되지 않은 것을 마음에 두지 말기 바란다. 억울함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그래서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이란 불경은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라며 ‘억울함을 당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문을 삼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물러난 이 전 부총리가 화병을 얻지 않기를 바란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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