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아파도 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쳐서 쓰러지면 그제야 쉴 수 있었다. 갖은 욕 다 얻어먹으면서……."(고2 남학생) "피아노를 전공시키려고 연습 안 하면 때리고 온갖 욕설을 퍼부어서 정말 엄마에게 정떨어졌다."(고1 여학생)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만 자리 덧셈 문제를 풀지 못하여 피멍이 들도록 맞았다는 아이, 몸이 아파도 그날 주어진 과제를 풀지 않으면 부모님이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다는 아이, 심지어 전교 2등을 했다고 아버지에게 된통 혼났다는 아이까지……. 부모들이 자녀에게 거는 기대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내 시험성적표를 거실 벽에 붙여놓고 엄마 아빠가 수시로 잔소리했을 때 정말 창피하고 원망스러웠다."(중3 남학생) "열심히 해서 성적 올렸더니, 일등도 아닌 것을 가지고 뭘 자랑하냐고 엄마 아빠가 말할 때 무지 서럽다."(고2 여학생)
공부를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공부 때문에 시달리기는 매한가지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꾸중과 비난 때문에 괴롭고,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부모의 과잉기대와 일과에 대한 지나친 통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부모가 바라는 대로 자녀가 건강하게 공부 잘하면서 성장하는 것만큼 즐겁고 보람된 일도 없다. 그래서 부모들은 아이를 꾸중하고, 타이르고, 때로는 칭찬도 하며 학습동기를 부여해 주려고 애쓴다. 그러나 성공하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막연한 논리는 아이들을 설득하지 못한다. 공부를 왜 열심히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는 그 모든 방법들이 별무신통하다. 너 하나 믿고 산다며 읍소하는 부모를 볼 때 아이들은 잠시 움찔하지만 학교생활과 공부 자체가 재미없는 아이들은 여간 곤혹스럽지 않다. 미래의 성공을 위해 재미없는 공부에 십수 년을 매달려야 한다니! 결국 아이들은 공부 안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자기 나름의 신념을 만들어낸다. 권력이나 지위 따위는 어른들의 성공지표일 뿐이다. 아이들은 연예인이 되어서 신나고 재미있게 살리라는 꿈을 꾼다.
아이의 생각이 철없다고 여기는 부모들은 결국 강경책을 쓰게 된다. 오락도 못하게 하고, TV도 못 보게 하고, 인터넷선도 잘라내고, 친구와의 만남에도 통제를 가한다. 억지로라도 공부하지 않으면 장차 실패한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부모의 신념이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제와 강요가 강할수록 반감과 원망도 커진다. 억지로 공부해서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 중에는 인생슴? 대한 회의와 우울증상이 생겨 상담센터를 찾는 경우가 많다. 자애로운 부모, 친구와의 우정, 인생의 즐거움을 포기한 대가로 얻은 대학 배지에 과연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답을 찾고 싶어서다.
혹자는 말한다. 어릴 때는 호랑이 같은 부모가 무섭고 싫겠지만, 덕분에 대학 공부하고 버젓이 출세하면 엄한 채찍질을 고마워하게 될 거라고. 자신도 역시 그랬었다고. 그러나 과연 그럴까? 혹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것은 아닌가? 호랑이 아비가 아니었다면 지금 자신이 낙오자가 되어 있을 거라는 생각도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신뢰를 보내며 감사하고 행복할 때 쓰는 표현이 있다. "우리 부모님이요? 친구 같아요!"
아이들은 친구 같은 부모를 두었을 때 가장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한다. 친구 같은 부모 밑에서 크는 아이들치고 명랑 쾌활하지 않은 아이가 없다. 그런 아이들은 성적과 관계없이 학교생활도 잘한다. "야! 언제 공부할 거니!"라고 소리치는 대신 "학교 공부 쉽지 않지? 아빠 엄마가 뭘 도와줄까?" 물어보자. 친구처럼 만화책도 함께 빌려 보고, PC방도 함께 가고, 영화관도 함께 가자. 함께 등산도 하고, 운동도 하고, 도서관도 가고, 문자도 주고받자. 무슨 의도를 갖지 말고, 친구처럼 담백한 마음으로 그렇게 하자. 친구는 다만 관심과 애정을 가질 뿐이다. 부모가 자녀를 친구처럼 존중하면 아이도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존중한다.
자녀가 자아실현의 길을 찾고, 미래의 하늘로 자유롭게 날아오르기를 원한다면 자녀와 친구되기를 권한다.
신규진 서울 경성고 전문상담교사 '가난하다고 실망하는 아이는 없다' 저자sir9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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