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에게 시와 삶과 산은 동의어"라던 일전의 이성부(사진) 시인의 말은, 상징으로 분칠되지 않은, 순박한 고백이었다. 그에게 그 셋은 어느 하나도 도드라지지 않는 동격의 병렬이어서, 거꾸로 그 무엇이 잠시 맨 앞 자리에 놓이더라도 나머지 둘과 충분히 조화하는 관계다. 이를테면 그 한 문장이 그의 압축된 문학론이고 인생론이며 산에 대한 철학이 되는 셈이다.
그의 시집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 가 나왔다. 1997년 말부터 시작해 지난 해 6월 끝낸 백두대간 종주의 시정(詩情)을 직전 시집 ‘지리산’(2001)에 이어 갈무리한 것이다. 62년 등단한 이래 8번째 시집이고, 제대로 등산을 시작한 지 25년 만의 결실이다. "근년 들어 부쩍 등산이 세상공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산만큼 일상이 잘 보이는 곳이 없거든요." 시집은 그러니까, 세상을 지고 오르내리는 길에 시인이 보고 느낀 삶의 시간인 셈이다.
그것은 때로는 ‘대간에서 나고 대간에 묻’힌 논개의 삶이고, 육십령 고개에 ‘쓰러져서 이 산에 보태는 흙이’ 된 의병의 삶으로 드러난다.
그 때 시인의 산이 ‘백두대간’의 한 능선과 봉우리와 골짜기를 이루늡는 구체적인 한 지점이라면, 보편의 산은 보편의 삶을 보고 느끼는 공간이 된다. 그는 거기서 ‘산에 들어가면 모두 사라진다/ 버리고 사라지는 것들이 있던 자리에/ 살며시 들어와 앉는 이 기쁨!’(‘기쁨’) 을 느끼고 ‘저를 낮추며 가는 길이 길면 길수록/ 솟구치는 힘 더 많이 쌓인다는 것을/ 먼발치로 보며/ 새삼 나도 고개 끄덕이며’(‘저를 낮추며 가는 산’) 수긍한다.
산도 삶처럼 사연으로 이어진다. 그는 임오군란의 의병들이 숨져간 ‘칠연의총’과 한국전쟁 당시 노동당 6개도당위원장회의가 열렸던 송칫골에서 ‘승리에 굶주린 얼굴들’을 떠올리고, ‘그렇게 몇 해 전 젊은 그대들과 나도 하나였’다며 위령한다. 추풍령 어름의 노근리마을에서는 미군의 양민학살 흔적 앞에서 ‘내 시(따위)는 덜 익어도 그만/ 잘 익어도 그만’이라며 곡(哭)한다.
그는 ‘산을 배우면서부터/ 참으로 서러운 이들과 외로운 이들이/ 산으로만 들어가 헤매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산을 배우면서부터’)고 노래한다. 그래서 ‘나는 기막힌 풍경에 감동하기보다는/ 앞서간 사람의 흔적에 더욱 가슴이’(‘표지기를 따라’) 뛴다.
그가 이번 시집에 ‘길’이라는 단어를 아낌없이 쓴 것도, 외로운 가슴들의 연대와 소통을 염두에 둔 까닭일 것이다. 그에게 길은 허름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길은 다음 사람들이 그 길로/ 더 많이 다녀야 비로소 길이다/ 닳고 닳아도 사그라지는 법이 없다’(‘비로소 길’).
그는 ‘내가 걷는 백두대간’이라는 부제를 단 시는 이번 시집으로 매듭을 지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이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어서도 내 떠돌이는 멈추지 않았’고 ‘나는 아직도 그리움의 실체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바람이 제 길 따라 휘적휘적 가는 것을 보면서/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 길을 찾거나 물을 만나는 이 기쁨’(‘숨은 골’)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그 ‘길’과 ‘물’이 곧 시이고 산이고 삶임은 자명하다. 그에게 시의 동의어는 그렇게 많다.
최윤필기자 walden@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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