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참석하는 종교 행사는 종교적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통령의 행사로서 그것은 위기 극복의 메시지나, 통합과 단결을 호소하는 정치 상징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기독교가 매년 갖는 국가 조찬기도회나 불교종단이 초파일을 앞두고 여는 나라를 위한 법회 등은 대통령 자신의 종교가 무엇이건 국가 지도자에게 간구와 축복을 구하는 행사이다. 며칠 전 국가 조찬 기도회는 노무현 대통령이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말한 것을 두고 정치스타일의 변화를 재확인 시켰다는 해석을 낳은 자리였다.
■ 기독교의 나라라고 할 만한 미국은 지난달 3일 53번째 국가 조찬기도회를 가졌다고 한다. 해마다 미국의 조찬기도회는 전현직 국가수반을 포함해 각국의 지도급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는 대형 국제 행사로 열린다. 한국의 이번 기도회는 37회째 행사였다고 하는데, 이는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오래된 기록이라고 한다. 한국 불교종단 협의회가 개최하는 법회 역시 오랜 기간 정기적으로 열렸지만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는 그가 교회 장로였던 탓인지 활발하지 못했다고들 기억한다.
■ 어려움에 처할 때 대통령들은 종종 종교 지도자에게 조언을 구한다. 정부 출범 이후 정국과 사회가 한창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던 재작년 9월 노 대통령도 김수환 추기경과 강원룡 목사, 송월주 스님을 청와대로 초청해 간담한 적이 있다. 이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비판 세력을 품는 것이 좋겠다. 언론사주들도 만나 풀 것은 푸는 것이 좋겠다"고 포용을 조언했고, 노 대통령은 "포용은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것인데, 나는 강자가 아니다"며 이를 일축했다고 해서 ‘뉴스’가 됐었다.
■ 이에 비해 이번 조찬기도회에서 노 대통령은 "제 양심이 깨어 있고 절제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며 포용을 다짐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인간 ‘노무현’이자, 국가 원수이고, 권력자이자, 정치인이기도 할 테니, 그의 양심이 깨어 있는 것은 보통 중요한 일이 아니다. 가령 한 인간에게 형성된 기질과 품성이 통치자로서의 덕목과 충돌하는, 양심의 딜레마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투적 공격형 정치로 일관하던 노 대통령이었던 탓에 드는 생각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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