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 소설가 정영문씨의 번역으로 출간됐다.
소설가들을 매혹시키는 소설가로 통하는 카버의 매력은 덤덤한 어조로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 할 말 다 하고 챙길 것 다 챙긴다는 데서 비롯되는 듯하다. 소설에서 그는 미국 소시민들의 있을 법한 일상을 그린다. 마당에 쓰던 가전제품과 가구를 늘어놓고 창고세일을 하는 사내와 그 물건들을 사가는 젊은 커플, 생일날 교통사고를 당한 아이의 부모에게 예약한 생일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전화를 걸어대는 제빵사 등등.
작가는 맥락을 형성하는 구구한 사연들을 철저히 배제한 채, 한 장면의 스케치로 모든 이야기를 함축한다. 그래서 각 편의 소설이 전하고자 하는 바는 선명하게 포착되지 않지만, 한 편 한 편 읽다 보면 전체의 상이 그려지고, 그 이미지를 구성하는 모자이크 조각들의 세밀한 내면들이 드러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다. 파산과 알코올 중독, 환멸과 절망, 사랑과 상처, 집착과 불륜, 진실과 이기심 등이다. 열 일곱 편의 작품을 모았지만 어지간한 중편 한 편 분량에 불과한 이 책은, 읽는 시간보다 읽은 뒤의 이미지와 느낌을 정돈하는 데 더 시간이 필요하다.
최윤필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