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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고/ 학벌주의 타파 정녕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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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고/ 학벌주의 타파 정녕 원한다면

입력
2005.03.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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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 입시부정, 고교 성적조작 등으로 인해 또 다시 간판사회, 학벌주의가 매도 대상이 되고있다. 학벌주의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다. 학벌주의 타파는 참여정부 국정과제의 하나가 됐고, 이미 지난 해 입사지원서 학력란 폐지 등의 ‘학벌주의 극복 종합대책’이라는 것도 나온 터다.

회사가 학벌로 사람을 뽑아서 안 된다면 그럼 도대체 뭘 보고 뽑으란 말인가. 학벌이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지표임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문제는 진짜 실력은 무시하고 학벌만 보고 판단한다는 것인데,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대목은 이것이다. 사람의 실력과 됨됨이를 보여 주는 지표 중 학력이 그래도 가장 믿을 수 있고 가장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널드 코오스의 ‘거래비용’이란 개념이 있다. 사람들은 서로 거래(교환, 계약)를 하며 살아간다. 이를 위해선 거래대상(물건, 서비스 등)을 잘 알아야 하고, 계약사항이 잘 이행될 지에 대한 확신을 필요로 한다.

쉽게 말해 속는 게 아닌지 잘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얻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거래비용이다.

회사가 사원을 채용하는 것도 하나의 거래다. 이 거래에서 회사는 취직희망자의 능력과 인성 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싶어 한다. 회사에 가장 크게 기여할 사람을 찾는 것이 목적이기에, 굳이 학력만 보고 사람을 뽑을 이유도 없다. 그래서 논술시험, 심층면접, 인성검사, 추천서 등 회사마다 갖가지 보완방법을 동원해 보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 비용이다. 이런 보완적 방법들은 시간,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을 뿐더러 평가결과의 해석도 갖가지다. 신뢰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곤 한다. 어느 모로 보든 생면부지 사람의 지적 능력, 성실성, 인내력, 독립심, 성취동기 등을 종합적으로 대변해 주는 데 있어서 학력만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학력이 간판이 되는 이유다.

여기서 학벌로 사람을 평가, 선발하는 자체에는 아무런 불합리성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또 그런 관행이 순전히 우리 사회의 편견이 만들어내는 결과만도 아니다.

학벌 중시 관행이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은 우리 국민 중에 학력이 절대적 유일무이한 지표라고 생각하거나, 능력과 인성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로부터도 자명하다.

진정한 문제는 학력 외의 다른 요소로 사람을 평가하는 제반 기술과 기법이 너무 낙후돼 있다는 것, 또 이런 기법을 사용하기에는 불신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선 장시간 면접으로 사람을 뽑는 게 관행인데 왜 우리는 그리 못하는지, 그 원인을 찾아 고치는 것이 해야 할 일이다. 면접은 주관적이라는 생각, 따라서 연고가 작용하기 마련이라는 생각, 그러므로 정당하지 못하다는 생각, 이런 온갖 부정적 인식이 있는 한 우리가 학벌주의 사회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또 학벌주의를 편견으로만 보고 개혁대상으로 삼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도 있다. 학벌주의를 힘으로 해결해 보려고 덤빌수록 오히려 적극적인 편견을 만들게 되고, 그로 인해 학벌주의는 더욱 더 극성을 부리게 된다.

해결책은 하나다. 능력과 인성을 다각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법을 속히 개발하고 널리 보급해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많은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 관련학계가 분발하고 정부, 기업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학벌주의 타파는 공평사회의 실현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적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정지작업이기 때문이다.

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한국정책학회장 다산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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