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일 밤 늦게 발표한 ‘외무성 비망록’은 많은 노림수를 담고 있다. 발표 시점이나 내용면에서 6자회담 참여 명분을 쌓기 위한 북한의 계산된 행동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단 비망록의 내용은 6자회담 무기한 불참과 핵보유를 선언한 2월10일의 북한 외무성 성명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달 21일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만나 "미국이 성의를 보여야 한다"며 제시한 회담재개조건을 구체화한 것이 눈에 띈다. 미국의 적대정책 철회 조건에 대해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 미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도 두드러진다.
200자 원고지 50매 분량의 외무성 비망록은 ▦‘폭정의 종식’ 발언 사죄 및 취소 ▦북한 제도전복을 노린 적대시정책 포기 ▦평화공존에 대한 정치적 의지 표명과 실천을 미국에 대한 주요 요구사항으로 제시했다.
비망록은 특히 미국 신문 사설, 전직 관리 발언까지 인용하며 논리를 폈다. 비망록은 "평양정부에 ‘적대의도가 없다’는 세 마디 말만 해주면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열린다"는 2월22일자 워싱턴포스트 사설을 인용하며 자신들의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또 북한인권법,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등의 실제 사례를 들며 자신들이 받는 위협을 호소했다. 한 마디로 미국의 정책 변화와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비망록 발표시점도 절묘하다. 6자회담 중국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衛) 외교부 부부장이 3일 오전 미국 수석대표 크리스토퍼 힐 대사를 만나기 직전에 북한은 비망록을 발표했다. 중국측의 입과 자신들의 비망록 공개를 통해 미국을 떠보는 전술인 셈이다.
북한은 그러나 비망록을 통해 미사일실험 재개 가능성을 내비치며 협박 전술도 구사했다. 비망록에는 "미사일 발사에 대해 현재 그 어떤 구속력도 받는 것이 없다"는 표현이 있다. 2·10 외무성 성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결국 미사일 실험 재개라는 ‘추가조치’를 감행할 수 있다는 강수를 던져 미국의 반응을 떠보고자 하는 의도로 해석된다. 정부 당국자는 "협상용 발언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실제 미사일실험을 실시하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한중, 미중 간 6자회담 재개를 위한 긴밀한 협의는 3일에도 계속됐다. 그러나 미국이 "일단 6자회담에 나와 모든 문제를 논의하자"는 입장을 바꾸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뚜렷한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외무성 비망록이란
북한은 성명, 담화를 통해 입장을 밝혀왔고 외무성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도 사용했다. 성명은 가장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고 담화는 일반적인 입장 발표, 질문에 답하는 형식은 공식입장 발표 전 미리 자신들의 주장을 상기시킬 때 하는 것이다. 2일 발표한 외무성 비망록은 주요 사안에 대한 상세한 입장과 논거를 담은 부연설명문 형식. 북한은 지난 1월 피랍일본인 유골과 관련해 비망록을 발표한 바 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