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대 신사복업체인 제일모직과 LG패션이 이탈리아 패션전문가에게 한 수 가르침을 청했다. 제일모직은 영화 ‘007시리즈’에 등장한 이탈리아 고급 신사복 ‘브리오니’의 기획 및 마케팅 전문가 가브리엘레 나폴레타노(62)를 상품기획 총괄디렉터로 영입, 지난달말 서울 본사에서 위촉식을 가졌다. LG패션은 이탈리아 고급브랜드 ‘로로피아나’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우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기획전문가 클라우디오 테스타(53)를 지난해 9월 패션컨설턴트로 영입했다. 신사복 강국 이탈리아의 ‘선진기획 노하우’를 벤치마킹해 명품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 배경이다. 남성들에게도 패션감각이 일종의 지적 능력으로 간주되는 시대, 이들 벽안의 전문가 눈에 비친 한국 신사복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벌써 6개월 남짓 한국시장을 경험한 클라우디오 테스타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다른점
메이드 인 코리아가 메이드 인 이탈리아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테스타씨는 한마디로 "표정이 없다"고 답했다. "소재의 품질이나 공장 설비 등은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일단 옷으로 제작된 상태에서는 고유의 매력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이유다. 신사복업체도 이에 동의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신사복업계는) 20년 전 전자업계 수준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최고급 이탈리아 소재를 수입해 써도 공장에선 코스트(생산단가) 중심으로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거예요. 고객의 욕구를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거죠." LG패션 구본걸 부사장의 말이다.
테스타씨는 표정, 즉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갖추기 위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조건을 4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소재의 품질, 둘째 고급스런 부자재, 셋째 정교한 패턴체계 개발, 넷째 색 배합과 코디 개념의 확립. 최근 LG패션과 제일모직이 자사 대표 브랜드인 마에스트로나 갤럭시 명품화를 선언하면서 집중 전략으로 토탈화 및 한국인 체형에 맞는 패턴개발을 내세우는 이유를 알려주는 대목이다.
◆ 토탈패션 개념이 부족하다
제일모직 갤럭시는 연초 ‘2005년은 토탈패션의 원년’이라고 선포했다. 유니폼처럼 정장만 찍어내는 관행에서 벗어나 토탈패션으로 가겠다는 구상이다. LG패션 마에스트로는 궁극적으로 제품구성의 50% 이상은 정장이 아닌 셔츠와 타이, 점퍼, 구두, 벨트 등 액세서리군으로 가져갈 계획이다. 역시 이탈리아노 패션전문가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
"기획단계에서 한국업체들은 정장만 쭉 몇 벌 작업하고 그 다음에 셔츠로 넘어갑니다. 그나마 몇 종 안되고요. 그러나 로로피아나 제냐 아르마니 등 이탈리아 업체들은 달라요. 정장을 하나 개발하면 그에 맞는 셔츠 몇 가지, 그 셔츠 각각마다 코디할 수 있는 색상별 무늬별 넥타이 몇 개씩 등으로 일종의 방사선 모양으로 계속 확장됩니다. 소비자에게 제품 선택의 폭을 넓혀주면서 연속 구매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획단계부터 치밀하게 계획하는거죠. 이런 토탈 코디 개념을 한국 신사복에 접목하는 것이 필요해요."
◆ 한국남성, '그럭저럭' 멋있다?
테스타씨는 한국남성의 신체적 특성을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노에 비해서 어깨가 좁고 가슴은 밋밋하고 허리는 좀 더 굵어요." 듣기에 따라서는 다소 기분이 나쁠 법도 한데 이어지는 완곡어법이 웃음을 자아낸다. "전체적으로 펑퍼짐해서 ‘그럭저럭’ 멋있어요."
이탈리아를 위시한 유럽의 남성정장은 비교적 몸에 꼭 맞고 소매는 셔츠소매 위로 1cm이상, 바지도 구두 등을 살짝 덮을 정도로 짧게 입는 것이 올바른 착장법이다. 반면 국내서는 소매가 손등의 절반을 덮고 바지나 재킷 총장도 전반적으로 길고 느슨하다. 신사복이 직장인의 유니폼일지언정 멋과 개성의 상징은 아니었던 지난 시대, 무조건 신체를 길고 크게 보이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반영한다.
◆ 패션산업 성장잠재력은 크다
"요즘 신사복은 각지고 과장된 패턴 보다 신체의 유연하고 날렵한 선을 살리는 추세입니다. 패턴이 가장 중요하죠. 한국업체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해외인력을 채용하고 패턴개발에 나서는 것도 바로 이점을 깨달았다는 얘기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 신사복의 성장잠재력을 높이 평가합니다." 테스타씨는 분기당 2주일을 한국에 체류하면서 상품기획 및 패턴개발에 동참하고있다.
이성희기자 summer@h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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