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월 이래 한국 현대 시문학의 영토를 넓혀온 시인들의 대표 시집을 리뷰하는 '시인공화국 풍경들--고종석의 詩集 산책'을 매주 목요일에 게재한다. 이 시리즈는 국어 교과서나 문학 교과서, 주류 문단 등으로 이뤄진 문학제도의 울타리 안쪽에 굳건히 발을 디디면서도, 그 바깥쪽까지 넉넉한 눈길을 건네며 현대 한국어의 가장 아름다운 속살을 탐색할 것이다.
나는 시인들의 공화국을 주유(周遊)하기 위해 정교한 로드맵을 만들지는 않았다. 산책은 그 때 그 때 내 변덕에 떠밀려 발길 닿는 대로 진행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발을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진달래꽃’(1925)으로 내딛는 것은, 최소한의 질서감각에서 내가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진달래꽃'은 한국 현대시문학의 수원지(水源地)다. 아니 그것은 수원지일 뿐만 아니라 가장 높은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것은 예스러우면서도 현대적이고, 깊다라면서도 높다랗고, 순정하면서도 풍만하다. 상투적 표현을 쓴다면, '진달래꽃'은 시인공화국의 정부(政府)다. 공화국 창건기에 세워진 이 정부는 지금까지 장기집권하고 있다. 장기집권하는 정부는 죄다 부패하게 마련이지만, ‘진달래꽃’에선 악취가 나지 않는다. 그것은 이 정부의 권력 행사가 근원적이되 요란스럽지는 않은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교양 있는 시 독자들에게 그가 좋아하는 시인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소월이라는 이름을 대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이 꼽는 이름들은 대체로 ‘문학과지성시인선’이나 ‘창비시선’의 리스트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고백하는 취향을 결정한 것이 그들 나름의 독립적 판단인지는 확실치 않다. 오늘날,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취향은 미끈한 문학비평가들과 날씬한 문학저널리스트들의 손아귀에서 빚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문학적 교양의 유행에서 벗어나 시를 제 몸으로 느껴보라고 주문한다면, 그리고 시인이란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점을 피조사자들에게 환기시킨다면, 그들이 좋아하는 시인의 리스트는 사뭇 다르게 작성될지도 모른다. 그 때, 소월과 ‘진달래꽃’은 교양 있는 시 독자들의 선호에서도 최상위를 차지하게 될지 모른다. 이런 사고실험의 결론이야말로 내 편견의 소산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산책을 ‘진달래꽃’에서 시작하는 것은 그런 편견 때문이다.
시인은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의 이름이라는 판단으로 돌아가 보자. 그럴 때 내게 대뜸 떠오르는 시인은 소월과 백석(白石)이다. 한국어문학 바깥에도 제 모국어의 속살에 도달한 사람들은 수두룩하겠지만, 한국어가, 한국어만이 모국어인 나는 한국어 바깥 풍경을 상상할 수 없다. 소월보다 열 살 아래인 백석은 소월과 동향이고, 소월의 오산학교 후배다. 그들의 시가 한국어 화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의 시어가 한국어 화자의 몸에 깊숙이 새겨진 기층 어휘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당대에 이르기까지 일천 수백 년 간 한국어에 침윤한 중국제 한자어를, 그리고 그들의 당대 얼마 전부터 한국어 어휘장에서 중국제 한자어와 경쟁하기 시작한 일본제 한자어를,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언어로서 반기지 않았다.
그러나 동향의 이 두 시인이 사용한 한국어는 한국인들에게 꽤 다른 질감으로 다가온다. 지금 한국인들의 마음만이 아니라 시인과 동시대를 살던 한국인들의 마음에도, 백석의 시가 소월의 시만큼은 드센 떨림을 유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 가운데 큰 것은 백석 시어의 강한 지방성에 있을 것이다. 백석의 서북 방언은 그 자체가 하나의 견고한 성채다. 그것은 서북 바깥의 한국인들에겐 더러 소통의 빙벽이다. 거기에 비해 소월의 서북 방언은 일종의 겨자와도 같다. 소월의 시에서 서북 방언은 뉘앙스다. 그 서북 방언은, 그의 시에서 이따금씩 보이는 한자어들처럼, 생선회에 풍미를 더해주는 와사비 같은 것이다.
‘진달래꽃’의 시어가 기층 한국어라는 것은 그것이 민족적이라는 것 못지않게 민중적이라는 뜻이다. 소월의 한국어는 한글학회의 국어순화운동이나 이북의 말다듬기 운동이 만들어낸 신(新)한국어가 아니다. 그것은 당대 민중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왔던 진짜 한국어다. 그런 자연스러움은, 소월의 시에서, 어휘의 수준만이 아니라 말 무더기의 수준까지, 곧 리듬의 수준까지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그의 시를 노래로, 가락에 올라탄 진짜 노래로 만든다. ‘엄마야 누나야’ ‘옛이야기’ ‘못 잊어’ ‘진달래꽃’ ‘산유화’를 비롯해 시집 ‘진달래꽃’의 많은 시들이 대중가요나 가곡으로 만들어졌지만, 그 시들은, 그런 제도적 노래가 되기 이전에도, 소월의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이미 노래였다.
"못 잊어 생각이 나겠지요"로 시작하는 ‘못 잊어’나 "봄 가을 없이 밤마다 돋는 달도"로 시작하는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를 한 번 소리 내어 읊어보라. 그 소리들의 연쇄가 우리의 귀에 닿기도 전에, 우리의 구개와 가슴이 먼저 반응하며 언어와 유쾌하게 통정(通情)하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소월의 시가 한국어 화자의 육체에 친밀한 것은 물론 도드라진 정형성 때문이지만, 그의 뛰어난 시들은, 위의 두 시에서도 보이듯, 그 정형성을 유지하면서도 살짝 구부린 것이다. 그 구부러진 정형성 속에서 화자-독자의 감정은, 평평한 모래땅 위를 흐르던 물이 굽이에 이르러 휘어 감기듯, 순하고 천연스럽게 펼쳐진다. 그 때 소월의 언어는, 네모 도시락 속의 식은 밥처럼 밋밋한 자수(字數)의 구속에서 살짝 벗어나, 본원적 정서의 여분을 서럽게 쓰다듬는다. 소월은 시를 쓰지 않고 시를 노래했다. 그는 시인의 원형으로서 가인(歌人)이었다.
시집 ‘진달래꽃’의 많은 시는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속의 많은 사랑노래들이 그렇듯, 그 시들은 결핍으로서의 사랑,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예컨대 ‘삭주(朔州) 구성(龜成)’의 화자는 "서로 떠난 몸이길래 몸이 그리워/ 님을 둔 곳이길래 곳이 그립"고, ‘산(山)’의 화자는 "십오년 정분을 못8 잊"는다. 그러니까 ‘진달래꽃’의 연애시들이 노래하는 것은 사랑으로부터의 소외, 제가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의 소외다. 그 시들은 사랑의 노래이자 이별의 노래다. 더러 그 노래는 넋두리에 그치기도 하지만, ‘개여울’이나 ‘초혼(招魂)’에서 보듯 정서의 밑동을 긁어내기도 한다. 이런 사랑, 이런 그리움을 표출하는 ‘진달래꽃’의 몇몇 시들은, 그 애절한 설움의 정서 때문에, 화자가 여성인 것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리움이나 설움은 여성의 정조라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정조다. 화자가 여성이라는 것이 문맥에서 또렷이 드러나지 않는 한, 화자를 시인과 포개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예컨대 "추거운 베갯가의 꿈은 있지만/ 당신은 잊어바린 설움이외다"로 끝나는 ‘님에게’는 갓스물에 이른 소월 자신의 실연시(失戀詩)가 분명하다. 비록 전통적 7.5조 리듬을 답습하고 있지만, 이 시는 실연의 심리를 정교하게 묘파한 절창이다.
‘님에게’에서 보듯 시집 ‘진달래꽃’의 그리움이 향하는 대상은 더러 ‘님’으로 호명된다. 그 ‘님’이 반드시 사람인 것은 아니다. 예컨대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로 끝나는 ‘님의 노래’에서, 그 ‘님’은 뮤즈나 시혼(詩魂)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7.5조 리듬에 실린 이 작품에서, 화자와 뮤즈의 로맨스는 즐겁게 졸졸졸 흐른다. 뮤즈를 사랑하게 된 앳된 청년의 행복감, 가슴 두근거림, 조바심 같은 것이 투명한 단순성 속에서 아른거린다. 시집 ‘진달래꽃’이 보이는 결핍으로서의 사랑은, 유년기로의 퇴행 속에서 어떤 이상향을 그리는 ‘엄마야 누나야’에서 보듯, 지나간 과거를 향하기도 한다.
마치 밀레의 그림 한 폭을 연상시키는 ‘밭고랑 위에서’따위의 힘찬 노동시가 한쪽에 버티고 있긴 하지만, 시집 ‘진달래꽃’의 세계는 애절하고 애달프고 애잔하다. 그러나 그 세계는 한(恨)의 세계라기보다 서글픈 흥(興)의 세계다. 이 생뚱맞은 흥은 화자의 젊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순정한 젊음 속에서는 애잔함이나 수줍음이나 무력함 마저 도도하다. ‘진달래꽃’의 화자들은 이루지 못한 사랑을 노래하지만, 그 불운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이 서글픈 흥의 세계에 도덕이나 계몽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더 나아가 종교가 들어설 자리도 없다. 무속을 비롯한 전통 종교든 기독교 같은 외래 종교든, 어떤 종교의 그늘도 ‘진달래꽃’에 드리워져 있지 않다는 것은 놀랍고 기쁘다. ‘진달래꽃’의 화자들은 많은 경우에 무력했지만, 그 무력을 자율적 주체로서, 단독자로서 감당했다. 그 점에서 이 화자들은, 결국 소월은 근대적 개인주의자였다. 소월은 서른 두 살에 아편을 삼키고 죽었다. "쓸데도 없이 서럽게만 오고 가는 맘"(‘잊었던 맘’)이 너무 고단했나 보다.
객원논설위원
먼 후일(後日)
먼 훗날 당신이 찾으시면
그 때에 내 말이 ‘잊었노라’
당신이 속으로 나물이면
‘무척 그리다가 잊었노라’
그래도 당신이 나물이면
‘믿기지 않아서 잊었노라’
오늘도 어제도 아니 잊고
먼 훗날 그 때에 ‘잊었노라’
※나물이다: ‘나무라다'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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